포천사람들

아흔한 살의 군내면 기부 천사, "죽기 전 청성초에 다시 한번 더 기부하고 떠나겠다"

포천좋은신문이 만난 사람 | 모교 청성초등학교에 장학금 1천만원 기부한 조춘묵(91세)·이차순(89세) 어르신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을 모아 모교 청성초등학교에 장학금 1천만원 기부한 조춘묵(91세)·이차순(89세) 어르신이 좌의리 자신의 집 앞에서 평화롭고 온화한 모습으로 기념촬영했다.

 

1931년생으로 올해 아흔한 살 되신 조춘묵 할아버지. 그는 지난 9월 26일, 80여 년 만에 자신의 모교인 군내면 청성초등학교를 찾았다. 

 

교장실로 들어선 할아버지는 김두환 교장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뒤 커다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김 교장이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비닐로 돌돌 싼 돈다발 뭉치가 나왔다. 현금으로 1천만 원이었다.  

 

"지난 몇 년간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또 제가 매년 500여 평의 밭에 포도와 감자, 콩, 고추 등 농사를 지어서 판 돈도 함께 가져왔다"라고 말한 조춘묵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이 돈이 내가 다니던 모교 청성초등학교 신입생들 장학금으로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라며 작은 소망을 전했다. 

 

▲조춘묵 할아버지는 군내면 좌의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포천 토박이다. 현재 사는 이 집에서는 13대에 걸쳐 450여 년을 살아왔다.

▲할아버지는 하루에 한번씩 명심보감 구절을 한자로 쓰면서, 그 글이 가르치는 대로 후대에 귀감이 되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신다. 구십이 넘은 연세에도 안경 없이 글을 쓴다는 할아버지는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의 목표다.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귀하고 어렵게 모은 돈을 모교에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은 이유를 묻자 "내가 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한 학년이 한 반씩이었어도 80명씩은 있었다. 그런데 현재 청성초 전교생은 60여 명뿐이다"며 "입학생들에게 많은 장학금 혜택을 주어서 학생 수가 늘어나게 해서 모교가 문을 닫는 일은 결코 없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청성초는 3년 전에는 입학생이 3명뿐이어서 현재 3학년 재학생은 3명이다. 다행히 작년과 올해는 스쿨버스를 운행해서 1학년과 2학년 재학생이 각각 15명으로 늘어나 그나마 다행이지만,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춘묵 할아버지는 군내면 좌의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포천 토박이다. 현재 사는 이 집에서는 13대에 걸쳐 450여 년을 살아왔다.

 

할아버지는 여섯 살 때 일찍 어머니를 여위었다. 당시 집 안이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3학년까지 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런 조춘묵 할아버지와 가장 친했던 초등학교 동창이 바로 전두환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한동 총리였다고 귀띔한다. 

 

▲김수경 군내면장(왼쪽 두번째)과 좌의1리 김태순 이장(사진 오른쪽)이 할아버지 댁을 찾아 위문하고 함께 포즈를 취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이한동 총리는 포천에 올 때마다 조춘묵 할아버지를 찾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한동아, 군내면 출신이 국무총리까지 지냈으니 이제는 더 올라갈 데라고는 임금님 밖에 없네" 하면서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던 사이였다.

 

포천 토박이인 할아버지의 포천 사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언젠가 포천에 수해가 크게 나서 군내면 주민들에게 큰 피해가 났을 때, 할아버지는 제일 먼저 군내면사무소에 찾아가 수재의연금 100만 원을 선뜻 기부한 일도 있다.

 

할아버지는 또 95년도에는 자신이 소유한 땅 100여 평을 마을 주민들을 위해 내놓았다. 현재 이곳에는 좌의1리(김태순 이장) 경로당이 지어졌고, 좌의리 마을 어르신들의 유용한 쉼터가 됐다. 

 

"이번에 청성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전하고 돌아오는데 너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다. 저희 할머니(아내 이차순, 89세)는 마을에 경로당 땅을 기부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장학금을 마련할 때도 무척 좋아했다. 이번에 1천만 원을 마련할 때 1백만 원 가량 부족했는데, 할머니가. 아픈 다리에도 불구하고 직접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와 장학금에 보태라고 주었다"고 전했다. 

 

조춘묵 할아버지와 두 살 터울인 이차순 할머니는 각각 19살과 17살이던 1949년에 결혼해 1남 5녀를 낳고 73년을 다정하게 살아왔다. 슬하의 병희, 민희, 병현, 국희, 숙희, 문희 등 6남매 역시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깊고 우애가 좋기로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 

 

할아버지의 자제들도 부모님들이 이번에 청성초에 장학금을 기부한 내용을 듣고 한결같이 기뻐했다. 큰딸 병희 씨는 "부모님이 저희들이 드린 용돈을 모아 장학금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자랑스러웠다. 다음번 장학금 낼 때는 저희 형제들도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부모님의 뜻에 따르겠다"며 장학금 기부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군내면의 기부 천사'로 불리는 조춘묵 할아버지와 이차순 할머니는 구십의 나이에도 아직 정정하다. 앞으로도 아낌없이 남을 도우며 건강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겠다며 환한 웃음을 짓는 두 어르신의 표정이 보석처럼 빛난다. 

 

"저희들이 건강해서 몇 년 더 살게 되면 다시 한번 더 장학금을 마련해 청성초등학교에 기부하고 떠나겠다"는 두 분 어르신 조춘묵 할아버지와 이차순 할머니.

 

이웃 사랑과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 지를 무언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정한 어르신인 두 분과 인터뷰를 마치고 상쾌한 마음으로 나서며 바라본 가을 하늘이 이날따라 유난히 보석처럼 맑고 청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