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신읍동에서

우리는 옛날옛적에 이랬었지요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뒤통수 벗겨진 색경을 보고, 바리깡으로 상고머리 빡빡머리 끾던 그 시절에는 학교에 가면 누구나 '쥐를 잡자', '저축의 달', '불조심', '반공 방첩'이라는 표어를 가슴에 달고 살았다. 

 

옛날옛적 지금부터 60년도 채 되지 않은 아주 가까운 옛날, 당시 초등학생들은 시계가 밥을 먹고 간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추워도 다 같이 추웠고, 배가 고파도 다 같이 굶주리던 시절이었다. 한집에서 태어나서 그 집에서 저세상 가던 때였다.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뒤통수 벗겨진 색경을 보고, 바리깡으로 상고머리 빡빡머리 끾던 그 시절에는 학교에 가면 누구나 '쥐를 잡자', '저축의 달', '불조심', '반공 방첩'이라는 표어를 가슴에 달고 살았다. 신문지로 멋진 모자를 접어 쓰고, 비료 포대로 야구 글로브를 만들어 놀던 시절이었다. 

 

남자들이 미장원이나 여탕에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엄마들은 아무데서나 저고리를 올리고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던 모습이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시절, 신문이 오면 맨 먼저 TV 방송 편성표를 훑었고, 그 다음에는 '오늘의 운수' 란을 찾아 보았다. 만화가 고우영의 수호지를 보려고 일간스포츠 신문을 사던 때도 이 무렵이었다. 

 

밤마다 천정에서 쥐새끼들이 운동회를 했고, 두툼한 전화번호부를 베고 누워서 텔레비전 보다가 깜빡 잠들던 그 시절에는 밖에서 드물게 만나는 외국인은 모두 미국인이었고, 토요 명화는 맨 미국 영화였다. 그리고 외국 노래는 모두 팝송이라고 생각했다.

 

급해서 뜀박질해서 가던 중이라도 국기 하강식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얼차례 자세로 얼어붙었고, 야간 민방위훈련 때 민방위대원이 "불 꺼요” 하던 시절도 있었다. 경인 역전 마라톤대회에서 아베베 선수가 맨발로 달렸고, 외국 대통령이 오면 단체로 길에 나가 국기를 흔들었다.

 

동네 개들 중 수놈은 다 쫑(john, 요한), 암놈은 무조건 메리(Mary, 마리아)였다. 동네 덕구(dog)들이 죄다 미국 이름의 요한이요, 성모 마리아였던 시절에 구두닦이, 상이군인, 연탄가스, 토큰, 회수권, 장수 만세, 주택복권, 말표 신발, 왕자표 신발, 범표 신발, 흰 고무신, 검정 고무신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고 살았다.

 

커피는 맥스웰 하우스, 프림은 동서식품, 감기엔 판피린, 소화제는 훼스탈이었다. 매 맞아 멍든 데는 안티푸라민, 이명래 고약, 송충이 잡기, 칡뿌리 캐기, 요괴 인간, 우주 소년 아톰, 여로, 아씨, 법창 야화, 오제도 검사, 전설의 고향, 대연각호텔 화재, 대왕 코너, 시민회관, 쥬시후레시, 스피아민트, 껌은 오~오~ 롯데껌이었다.

 

김일의 박치기, 당수왕 천규덕, 시발택시, 크라운 택시, 포니, 한강다리 전찻길엔 전차가 느릿느릿 달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열쇠키를 만든다며 전차 철길에 대못을 올려놓고 도망가고, 우리 삼촌은 전차비 안 내려고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져 삼각지에 있는 유명한 뼈 접골원에 다녔다.

 

다마네기, 다꽝, 벤또, 빠게스, 다라이, 와루바시, 모찌 등 일본말이 우리말처럼 유행했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 없이는 못 마시는 줄 알았던 때였다. 서영춘의 시골 영감 처음타는 기차 놀이에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실갱이 났네~ 하면서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 어딨어? 하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학교에서 여학생들은 오후반이면 오전반 끝날 때까지 공기놀이하고 고무줄 하며 기다렸고, 남학생들은 소풍 가기 전날 비가 올까 봐 연신 하늘을 살폈다. 아랫목에 묻어둔 밥그릇 엎어지면 이불에 묻은 밥풀을 떼어 먹고, 낮잠 자고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 가방 메고 다시 학교 가던 시절도 있었다.

 

중국 무협영화 이소룡의 정무문, 성룡의 취권, 왕우의 외팔이 시리즈는 추석과 설날이면 TV에서 명절 특집 영화로 노상 틀어대던 시절. 운동장을 돌며 맹호부대, 백마부대 군가 부르고, 옥수수빵 배급받던 시절에 씹던 껌을 벽에 붙여놨다가 다시 씹고, 덴찌 후라씨로 편먹고 놀던 시절, 어린 여자아이들은 폴짝폴짝 뛰면서고무줄 놀이를 하며 '푸른하늘 은하수~ 하연 쪽배에~'를 불렀고, 또 엄마에게 자기 죽으면 양지 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노래했다.

 

딱지치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달고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생활이었다. 당구장에 갔다고 학생부에 끌려가 뒤지게 맞고, 극장에 갔다가 걸리면 정학 받던 시절에 극징에서 안소영이 말을 타고 가슴 출렁이며 해변을 달리고, 키스신이 나오면 단체로 휘파람을 불었다.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 혼자서 잠자고 있으면 기분이 야릇해졌고,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는 아직도 몸 성히 잘 있는지 궁금했던 그 시절. 동네에서 하나뿐이던 축음기에 찍찍거리는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삐빠빠룰라~ 이츠 마이 베이비'라는 외국 가사를 부르며 다이아몬드 스텝에 트위스트를 추던 그 시절.

 

옛날옛적 아주 가까운 옛날, 우리가 모두 이제 막 피어나는 연두색이던 시절. 아, 그립구나 그 시절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