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프로방스, 바람과 햇살 7-마지막 편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필자 김은성 작가.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김은성 작가의 이번 원고는 이미 6월 초에 포천좋은신문 편집부에 도착했는데, 편집자인 제가 병원에 입원하느라 이제야 원고를 게재합니다. 김은성 작가님과 독자들에게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Marseille 마르세유 

 

테제베 고속철(TGV) 역에서 걸어서 5분도 채 안 걸리는 역전에 잡은 숙소를 잘 이용해주는 차원에서, 오늘은 기차 타고 길을 떠나본다. 다행히 마르세유(현지 발음으론 '막세이'에 더 가깝다) 최고의 구경거리인 옛 항구도 역에서 걷기 좋은 거리에 위치하여 오늘 기차여행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느꼈다.

 

단지, 알람을 해놨는데도 아침에 꼭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잠을 설쳐서 종일 몸이 고달팠다. 별거 아닌 걸로도 잠을 설치는 신경의 노쇠함을 이럴 때 절감한다. 한적한 시골 여행을 선호하는지라 큰 도시에 속하는 이곳은 뺄까 싶기도 했는데, 프랑스 국가에도 등장하고 수많은 소설과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이 도시를 안 찍고 갈 수는 없다고 결론짓고, 살짝만 보려고 기차를 선택한 이유도 있다.  

 

아비뇽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마르세유역에 내리니 '아, 역시 이곳은 굉장한 곳이다!' 인정하게 하는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멀리 산 정상에서 금빛 성모상이 성당 위에서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림이 짜잔.... 하고 펼쳐지는 첫인상이 압권이다.

 

▲기차에서 내리면 반겨주는 마르세유의 첫 모습.

 

프랑스혁명 때 마르세유에서 온 시민들이 정부청사로 진군해오며 불렀다는 매우 선동적인 가사와 힘찬 행진곡 같은 프랑스 국가의 제목이 'La Marseillaise'라서, 막연히 이 동네 사람들은 다혈질일 거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어디선가 책 속에서도 여긴 뱃사람들이라 거친 동네라고 읽은 듯하다.

 

▲항구에서 방금 잡아 온 생선을 다듬어서 판다. 요즘 보기 드문 이런 장면은 관광객을 위해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곳에 와서 보니, 지형적으로 천혜의 조건을 가진 항구이고 북아프리카며 터키에서 온 모슬림들이 많은 멜팅팟(melting pot)이며, 프랑스가 잘난척하며 휘날리는 정체성, 톨레랑스(다양성을 품는 포용력)의 전형적인 모습의 도시다.

 

대한민국에 대입하면 부산에 해당하고, 파리 다음가는 '프랑스 제2의 도시'라는 위상에 비해선 매우 작고 소박하다는 것도 좀 놀라웠다. 프랑스는 물론 지중해에 있는 가장 큰 항구라는데 인구도 85만 명 정도다. 유럽에선 도시에 인구가 편중되어 살고 있지 않다는 정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골로 분류되는 곳들이 더 깨끗하고 낙후된 곳이 눈에 안 띄는 것에 비하여 도시에 오면 오히려 빈곤과 어두움을 많이 만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갇혀 있었다는 감옥. 죄수들도 이 전망을 즐겼을까.

 

가이드북에선 여기보단 바로 옆 마을 카시( Cassis)가 훨씬 좋다고 하던데 둘 다 볼 시간은 없을듯해서 아비뇽에서 40분 기차 타고 내리자마자, 카시 쪽에 위치한 해상공원 칼랑크(Calanques inlet) 구경시켜주는 배를 3시간 탔다.

 

▲하얀 석벽의 샤또와 닮은 자연을 파란 바닷물이 감싸주는 국립해상공원.

 

론강에서 형성되어 여기까지 밀려온다는 바람( Mistral)이 하늘빛 푸른색(프랑스 말로 Azur) 바닷물을 춤추듯 일렁이는 가운데 하얀 석회암 기암절벽들이 피요르드 같은 해안선을 이룬 곳이다.

 

바위 사이로 깊게 들어간 해안선에 예부터 있던 작은 어촌의 주택들은 국립공원 안이라서 매매나 임대는 못하고 상속만 하는데 자연보호로 전기도 수도시설도 없다고 한다. 전기 수도 안 줄 테니 그래도 살든지 말든지... 이다.

 

미국에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아예 퇴거해야 하는데 여기선 개인의 재산권이 더 강력한 것 같다. 그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의 백사장에서 물놀이 중인 후손들은 조상을 잘 둔 사람들이다.  전기 없고 수도 없는 저곳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소유할 수 없는 가장 귀한 주거환경이다.

 

▲국립공원 가운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터에서 사는 주민들이 보인다. 다시 마르세유 항구로 돌아와, 가이드북 추천 식당으로 가서 오만가지 해물을 멀미 나게 어지럽도록 먹어주었다.

 

 

▲지중해 푸른 바다가 주는 너무나 신선하고 풍성한 해산물.

 

바다 냄새를 잔뜩 묻히고 나서, 편리하지만 이거 타고 다니면 모양 빠진다고 가이드북이 경고하던 미니 기차를 타고 마르세유의 몽마르트르에 해당하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시간이 많았다면 우리도 여유롭게 걸어서 갔을 거다. 오랜 역사를 아름답게 담고 있는 지중해의 항구, 마르세유의 전망을 즐기고 언덕 위의 성당을 방문했다. 

 

▲Notre Dame de la Garde. 언덕 위의 성당에서 본 예수님의 조각상.

 

아비뇽으로 돌아오는 기차가 9시인데 구항구(old port)에서 내내 놀아도 8시라서 역으로 오는 길에 쁘렝탕 백화점을 잠시 돌아봤다. 아마 대전 현대 백화점보다 상품의 평균 가격이 훨씬 낮지 않을까 싶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프랑스 명품은 없다. 비싼 명품을 만들지만, 내국인들은 안 사고 외국에만 팔아먹는 중인데, 사주는 사람들이 니네들은 왜 안 사냐고 심통 낼 수는 없다. 미국보다 아기자기 이쁜 프랑스 브랜드들이 많아서 구경은 즐겁다. 자동차로 1시간 반 걸릴 아비뇽으로 40분도 안 걸려 우릴 태워다 주는 고속철 덕분에 마르세유를 떠나 1시간도 안 걸려서 내 침실로 돌아왔다.

 

오, 빈센트(Oh Vincent.)

 

오늘은 고흐의 발자취 순례의 마무리로 그가 1년여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140여 점의, 현재에도 많이 알려진 대부분의 명작을 그린 곳, 셍레미(St Remy)로 가본다. 셍레미는 아를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셍레미 동네 길에서 만난 집. 파란색 storm window(태풍 보호용)는 강한 햇살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 동네에서는 창문 옆에 장식용으로 달아놓는다.

 

고흐가 그림 그리던 풍경이 아직도 비슷하게 남은 아를과 달리, 셍레미는, 관광안내소(tourist office)에서부터 병원까지 800미터 동네 길에 그가 이곳에서 살 때 그린 그림들과 작품과 연관된 그의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신병으로 입원한 환자가 쓴 편지라기에는 너무나 따스하고 논리 정연해서, 그의 작품들과 함께 마음을 몹시나 뭉클하게 한다.

 

▲고흐의 올리브밭과 그의 편지와 작품.

 

프로방스의 바람이 고흐가 그린 하늘에 표현된 거 아닐까 생각되고 있었는데, 오늘 그룹 투어로 온 사람들에게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을 주워들으니 내 느낌이 맞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올리브 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릴 때의 신비한 빛들과 바람을 맞으며 높이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며 느낀 고흐의 영성을 그의 편지에서 확인하며 마치 그를 만나는 듯했다.

 

볼 것들이 너무 많은 프로방스 여행 중 내가 가장 진하게 만난 것이 바람이었는데, 고흐도 편지에서 바람에 대하여 많이 썼고, 이곳 주민들은  미스트랄이 너무 세게 불어서 고흐를 비롯한 정신병 환자들이 미쳐버린 거라고 말했다니 이곳의 바람은 그 위력이 대단하다.

 

난 그 강풍의 그림자만 느꼈는데도 이렇게 깊게 담아가니 그 위세는 어떨지 가늠도 힘들다. 정신병원의 환자였던 셍레미의 고흐는 내 아들 정도의 나이였다. 외로운 청년이었던 고흐를, 간호사로서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나며 나의 감성이 벅차 오는 것을 느낀다.

 

▲고흐가 병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정원에 라벤더가 피었다.

 

그림의 대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작품에서 전해 받으며, 처절히 외로웠던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마음껏 사랑할 수 있어서 그렇게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생각된다. 죽기 전 70일간 파리 근처 마을 (Auvers-sur-Oise)에서 머물 때도 미술치료가 도움 될 거라는 의사의 말대로 거의 하루 한 점을 그렸다고 한다. 

 

▲고흐의 병실 셍레미의 정신병원은 천 년 된 수도원 건물이고 아직도 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병원 한쪽에서 고흐 순례객들에게 입장료 받고 그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셍레미의 파란 하늘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 보고 온 그의 그림 속 풍경들과 그곳의 바람은 나의 기억의 창고에 소중하게 저장될 거 같다. 고흐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같다고 한 사이프러스 나무도, 낮보다 더 신비한 색으로 빛나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도, 은빛 올리브 나무들도 그의 작품 속에서 모두 바람에 춤춘다.

 

외로움이 쏟아지는 그의 자화상 속의 파란 눈이, 오늘의 외로운 영혼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그의 정신세계를 어둠 가운데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질병과 싸우며 화폭에 그려낸 아름다운 그의 영혼.... 질병이 그의 육신의 장막을 거둬 갔으나, 나는 그의 그림을 통해 확신한다. 마침내 그는 본향에서 온전한 사랑과 휴식 가운데 있으리란 것을.

 

이곳에서 하루 내내 머물고 싶었으나, 근처에 플라멩코 서식지가 있다고 해서 달려갔는데 봄에나 볼 수 있다고 한다.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습지라서 개발이 안 된 넓은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계속 자연보호 중이다. 어딜 가나 천 년 된 마을들이 있는 프랑스에, 인가 없이 광활한 원래 자연의 모습도 있다는 것을 봤다. 

 

▲카마르그(Camargue) 국립공원에 플라멩코가 오면 이렇게 보인다.

 

그동안 열공하며 너무 많이 봤으니 이제 뭐 그리 볼만한 게 이 근처에 있을까 싶었는데, 아랫마을 셍레미에서 고흐가 바라보며 그리던 바위산 레잘피( Les Alpilles)에 난공불락 요새처럼 올라앉은 중세마을 레보(Les Baux)에 가보니, 이 여행의 볼거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레보의 골목길.

 

석회암 바위를 뚫고 깎고 다듬고 난리 쳐서 샤또로 만들어 놓고 오랫동안 힘자랑 꽤나 했다는 동네다. 늘 적으로부터 보호하려고 산 위에 성을 쌓고 살아온 유럽인들... 내 동네에서 내 거 먹고 조용히 사는 체질은 아니었던 거다. 호시탐탐 남의 꺼 뺏어서 더 잘살려고 하다가 나중엔 바다로 나아가 오만 군데 식민지로 접수한 국민성을 보게 된다. 여기저기 널린 유적으로 천년 세월쯤은 늘 일상에서 끼고 살아가는 이들의 시간관념과 역사 관념은 기타 대륙의 사람들과는 다를 거 같다. 

 

▲레보의 산 위,  바위산을 깎고 다듬어서 세운 샤또 앞에도 라벤더… 여행의 막바지, 이제 좀 이 동네가 익숙해지려니 떠날 시간이다. 여행은 열공이니 집에 가면 방학이다!

 

라벤더에게 작별을 고하며

Au revoir lavande

 

살살 놀며 쉬며 3주 여유롭게 지내진 못했어도, 열심히 운전하고 다닌 남편 덕분에, 알찬 여름학기(summer school) 3주 마치고 정든 아비뇽 생활을 접는다. 오늘 하루 어디 가고 싶냐고 묻는 남편에게, 세낭크(Senanque )수도원이라고 답했다. 이 여행을 선택한 이유이고, 아비뇽에 살림 차린 이유이기도 한 세낭크의 라벤더! 

 

▲내 눈으로 확인한 수도원 앞의 라벤더 숙소에서 출발하여 1시간 동안, 구글이  프로방스의 시골 구석구석과 루브롱( Lubron) 산골을 돌려가며 전에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여 수도원으로 데려간다.  

 

지난번에 덜 피어있던 라벤더가 오늘은 짙은 보랏빛으로 펼쳐져 있고, 오전인데 벌써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꿈꾸던 그 풍경을 마음과 눈에 담고, 또 사진에 담고, 오전 11시까지만 볼 수 있다는 중세 수도원의 내부도 관람했다. 1988년부터 다시 수도사들이 들어와 수도원으로 이어져 가고 있는 석조건물에서 천년 세월을 만져보며, 관념에만 존재하는 개념. 시간의 실존을 손끝으로 더듬어 본다.

 

▲수도원 내부의 시원한 돌계단과 라벤더로 장식한 십자가. 이 돌계단에 앉아서 은혜로운 말씀을 듣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이 건물을 지은 수도사들이 여기서 묵상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과 그분이 이 땅에 오셨던 그 시대가 그리 오래전이 아니었던 듯 피부로 느껴져 온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현존이 생생하게, 천 년 전 사람들의 끌과 정 자국이 남아있는 돌을 통해 실감 난다. 돌로 지어서 기분 좋게 시원하고 성스러운 그곳에서도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루시용으로 가는 길목의 라벤더밭에서 미국에서 40불도 더 될 만큼의 라벤더 한 아름을  4유로에 샀다.

 

오후가 되면서 관광객들이 인해전술로 그곳을 덮어버릴 기세일 때, 전에 가본 동네 중 이 근처에서 제일 이쁜 마을, 루시용(Roussillon)으로 다시 가본다. 라벤더가 덜 피었던 지난번과 달리, 7월에 접어드니 이 동네도 역시 바글바글한다.

▲루시용(붉은 흙)의 붉은 벽에 매달은 올리브 오일을 짜던 맷돌 앞에서.

 

여행 마지막 날이라고 호사할 각오로 좀 멋있어 보이는 식당에 갔더니 손님들이 다 미국 사람들이다. 미국 사람들이 달러를 마구 뿌려대도, 어쩌다 만나는 영어 팸플릿에는 영국 국기를 그려놓지, 성조기는 한 번도 못 본 곳이 프랑스다.  빨간 흙이 아름다운 이곳은 루시용 말고 크레용으로 불러야 할 듯, 동네의 색감이 이뻐도 너무 이쁘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수다한 관광객들에게 파묻혀서 마을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내일 떠날 준비로 일찍 귀가한다.

 

▲루시용의 언덕 위에서.

 

처음으로 일찍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에서 손님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대접하고 있다. 맨날 이랬나? 매일 사 먹은 아이스크림을 오늘도 한탕 사 먹고 왔지만, 공짜라니 또 먹는다. 토핑(Topping)도 가지가지라서 내가 좋아하는 아몬드를 듬뿍 얹어서... 

 

너무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프로방스의 그림 같은 마을들엔, 박물관이 되어버린 듯 보이는 수백 년 된 성당들이 꼭 있으나 살아있는 듯한 교회는 못 봤다. 자기들끼리 너무 멋있게 풍요롭게 산 지 오래된 이 나라엔 하나님이 계실 곳이 없어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톨레랑스라고 자랑하는 프랑스의 인본주의에는 영적인 무지와 교만이 가득 느껴진다. 힘들다고 아우성치기 시작하는 오늘날의 프랑스에 필요한 것은 마크롱의 En Marche(전진 앞으로!)가 아니고, 회개와 겸허와 영성의 회복일 텐데, 잘난 프랑스인들이 아직 그럴 거 같아 보이지 않는다. 

 

▲더는 예배가 없는 아름다운 건물, 루시용의 성당 앞에서.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프로방스를 3주간 들여다보고 떠나면서, 작년에 토스카나에서 산전수전 공중전 겪어가며 이탈리아와 쌓은 따스한 정분을 프로방스가 나눠 가지 않았다는 것도, 이 꽉 찬 느낌의 잘난 나라는 내가 사랑하기에 너무나 먼 당신이라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김은성 작가의 '프로방스, 햇살과 바람'은 이번 회를 끝으로 7회에 걸친 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매번 전 세계의 새로운 곳으로 독자들을 초대해, 미술과 문화 등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도 정감 넘치는 친근한 필체로 소개하는 김은성 작가의 다음 연재에 기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