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분에 가장 좋았던 것은 야외 콘서트를 진행한 것이다. 야외 콘서트를 몇 번 진행하려다
형편상 진행하지 못했는데, 코로나는 덕분에 실행하기로 했다. 실내보다 실외가 안전하기 때문이다.
“아주 짧게 해주세요.”
미장원에 갈 때마다 내가 했던 말이다. 나는 오래도록 짧은 커트 머리였다. 그 이전에는 단발머리였다. 파마를 한 것은 20대 초반에 한 번, 30대 후반에 한 번뿐이었다. 30대 후반에 파마를 하고 그대로 머리를 길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긴 머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때의 사진을 보면 지금도 생소하다.
지금 나는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미장원에 간 것이 꽤 오래됐다. 코로나19 이후, 나는 미장원을 딱 한 번 갔다. 커트 머리가 길어져 더 견딜 수 없을 때 달려갔다. 이렇게 질끈 묶고 얼마를 지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런 상태로 잠시 더 있어 볼 예정이다.
옷도 한 번 사러 가지 않았다. 있는 옷도 많다. 시골에 살면서 옷 욕심은 더욱 없어졌다. 차리고 나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한두 벌로 한 계절을 난다. 생필품은 대형마트에 가서 남편이 사 온다. 책방을 하고 있다는 핑계로 나는 통 나가지 않는다. 봄여름 계절 내내 냉장고와 텃밭을 들락거리며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이렇게 하고도 살 수 있구나, 싶다. 매일 장을 보던 시절도 있었고, 철마다 옷을 사던 시절도 있었다. 코로나가 나를 바꾸기 전 나는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와 살면서 이미 한 번 변했다. 코로나 이후 생활은 더욱 단순해졌다.
나는 시골에서 책방을 한다. 만 2년 됐다. 시골에 책방을 차린 이유는 시골에 살면서 책방을 하고 싶어서였다. 책방을 하기 위해 자리를 찾아다녔고, 지금의 집을 구입했다. 집이 조금 커서 걱정이었지만, 소나무 숲과 오래된 나무들이 그런 염려를 사라지게 했다.
시골에 차린 책방, 누가 올까 싶었지만 한두 사람 찾아왔다. 작가 강연, 북 토크, 클래식 콘서트, 요리 교실 등등 다양한 일들도 진행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그 어떤 것도 ‘그대로 멈춤’이었다. 잠시 확산세가 꺾이면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특히 <시골책방입니다>라는 에세이집을 내고, 그것이 방송 등에 소개되면서 주말에는 사람들이 조금 더 찾아왔다. 그러나 8월 15일 광화문집회를 기점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다시 책방은 주말에도 사람 하나 찾아오지 않았다.
▲두 테너가 노래를 부르는데, 나무 위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옆 개울에서는 물소리가 났다.
아들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 집은 원래 사람이 없던 곳이잖아요. 서울에서 장사 잘되던 곳들은 오죽하겠어요. 나가면 분위기도 이상해요.”
원래 사람이 없던 곳이니 그러려니 하고 지낸다. 그러나 때때로 견딜 수 없는 시간이 오기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동안 대대적인 집수리 공사가 있었다. 지난여름 긴 장마와 폭우로 집 벽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느라 우울할 틈이 없었다.
사람이 오지 않는 책방에서도 나는 한가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당장 끝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고, 지금도 살아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 새벽에 일어나 스포츠센터로 갔던 나는 조금 늦게 일어나 아침 일찍 책방 문을 연다. 9시 반쯤 커피를 마시고 10시쯤 책상에 앉았던 나는 9시 이전에 책상에 앉는다.
출판사도 겸하고 있음으로 주문 도서를 체크하고, 책방용 책을 주문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행사 일정 등을 연기하고, 그에 따라 연락을 취하고, 취소한 사람에게는 환불처리를 한다(사실 이런 일들은 너무 힘들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행사도 기획한다. 언제까지나 코로나 19로 멈춰 있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물론 행사는 야외 마당에서 주로 하고, 인원도 소수로. 그리고 짬짬이 책을 읽는다. 살아있는 생활이지만 번잡하기보다는 단순하다.
책방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역시 보고 싶은 책을 맘껏 본다는 것이다. 맘껏 이라니, 꽤나 배부르게 읽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한 달에 너덧 권 읽었던 책을 코로나 이후에는 한 달 평균 10여 권을 읽었다. 8월 한 달 동안은 18권의 책을 읽었다. 가벼운 책도 있고, 더러 무거운 책도 있었지만 책방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읽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어서, 책방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코로나 덕분에 가장 좋았던 것은 야외 콘서트를 진행한 것이다. 야외 콘서트를 몇 번 진행하려다 형편상 진행하지 못했는데, 코로나는 덕분에 실행하기로 했다. 실내보다 실외가 안전하므로. 첫 야외 콘서트를 하던 날은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어떡하나 싶었는데 연주가 시작할 즈음에는 비가 그쳤다. 두 테너가 노래를 부르는데, 나무 위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옆 개울에서는 물소리가 났다. 그러다 비가 왔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노래를 들었다.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고 바리톤, 소프라노가 노래했다. 새들이 날아다녔다. 나뭇잎이 나부꼈다. 바람이 지나갔다. 몸에 전율이 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비가 왔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노래를 들었다.
그다음 날은 발코니에서 연주했다. 들깨밭을 사이에 두고 객석과 무대가 만들어졌다. 뒤에는 소나무숲. 해가 지고 있었고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고 바리톤, 소프라노가 노래했다. 새들이 날아다녔다. 나뭇잎이 나부꼈다. 바람이 지나갔다. 몸에 전율이 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마스크를 쓰고 가족끼리 혹은 연인이 앉아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쩌다 코로나19로 영화 속 풍경처럼 살고 있지만,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내일을 살아내게 하고, 그 내일이 일생을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