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의 토끼’가 되라

필자 정영수는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군대에서는 미군 통역장교를 지냈다. 신문사 입사 후 평생 언론인의 길을 걸었고, 중앙일보 편집부국장으로 퇴직했다. 전국 편집기자들의 모임인 한국편집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

 

‘포천좋은신문' 창간에 붙여

 

아쉽게도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서울 충무로 스카라극장에 40여 년 전 어느 여름날 '25시(The 25th Hour)'라는 이름의 뜬금없는 영화 간판이 나붙었다. 너무나 생소한 새 영화 ‘25시’는 루마니아 작가인 게오르규(Constantin Gheorghiu)가 1949년에 발표한 소설의 제목인데, 터키 출신의 베르뇌유(Verneuil)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대박이 난 영화다. 

 

작가 게오르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파시스트의의 압박을 받던 고국 루마니아를 떠나 프랑스에 망명한 후 나치와 볼셰비키에 시달리던 약소민족의 설움을 고발했다. 자전적 소설인 '25시'도 역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받는 나라들의 운명을 묘사한 작품이어서 세계적인 호응을 얻었다. 특히 그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술회하고 '한국 찬가(Eloge de la Coree)'를 쓰면서 한국을 5차례나 찾았다.

 

소설과 영화의 제목으로 소개된 ‘25시’는 하루 24시간이 모두 끝나고도 영원히 다음 날 아침이 오지 않는, 이를테면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다. 작품에서는 25시는 수사적 의미로 ‘전쟁’을 암시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고통받는 현재의 시간을 뜻한다는 것이다. 소설 '25시'는 인간성 부재의 상황과 폐허, 그리고 절망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25시는 결국 인간성 부재의 상황. 그 극한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인간성 회복의 길뿐이라고 작가는 역설한다. 그는 동양의 정신문화에서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25시'에서 동양적인 인간상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기계문명에 항거하는 인간의 처절하고 끈질긴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준 것이다.

 

작가 게오르규는 진정한 문화예술인의 역할이 현실 세계가 지닌 문제점을 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비해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그는 시인이나 작가를 '잠수함의 토끼'에 비유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옛날 수병들은 밀폐된 공간인 잠수함에 들어갈 때 토끼를 데려갔다고 전해진다. 공기에 민감한 토끼가 산소부족으로 호흡곤란을 겪다가 죽게 되면, 그것을 신호로 잠수함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라 산소를 공급받았다는 것이다. 작가나 시인도 이를테면 ‘잠수함의 토끼’처럼 세상의 불합리한 징후를 가장 먼저 알아차려야 하는 존재에 비유한 것이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던 루마니아의 성직자이기도 했던 게오르규는 실제로 자신의 나치 잠수함에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론에서 ‘잠수함의 토끼(Submarine Rabbit)’를 언급한 바 있다. 물밑 밀폐된 공간인 잠수함에선 생존에 필요한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생명을 보전할 수 없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산소를 측정하는 계측장치가 미흡해, 공기가 탁하면 즉각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토끼를 잠수함 맨 밑에서 키우다가 토끼가 호흡곤란으로 죽게 되면 잠수함은 물 위로 부상하여 산소를 채웠다. 게오르규는 토끼를 빗대어 여러 시대 상황 속에서 글을 쓰는 이들의 ‘이성적 깨우침’을 피력했다. 이처럼 자극에 민감한 예비신호로 위험이나 변화를 알려줘야 하는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여파로 피폐해진 경제 상황은 암담한 우리의 미래를 예고해준다. 잠수함 속에서 산소공급이 끊겨 호흡이 힘들어지면 이미 때는 늦다. 그 이전에 누군가 경각심을 일깨워 줘야 할 것이다. 바로 지금, 최우수 인력과 콘텐츠로 다양한 미디어채널을 제공하기 위해 힘차게 도약하는 '포천좋은신문'의 시대적 사명과 역할은 참으로 막중하다.

 

촉망받는 신문사 후배의 매체 창간에 즈음하여 당부드린다. 언론계와 사회 각 분야에서 쌓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포천좋은신문이 앞장서 침체한 사회적 분위기를 일신하고, 활기찬 내일을 헤쳐나갈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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