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한국인이 변하고 한국 문화와 사회가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변화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고 있다

해가 바다에서 뜰 때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몇 가닥 빛이 바닷물을 적시며 반짝이다가 어느 순간에 찬란한 태양으로 어둠을 뚫고 온 바다를 붉게 만들며 불쑥 솟는다. 일몰은 반대다. 서녘 하늘로 천천히 저무는 해와 황혼빛의 시작, 막바지 황홀한 황혼에 이어지는 어스름, 갑자기 닥치는 일몰, 그리고 어두움이다. 일출, 일몰 모두 급박하게 이뤄진다. 그리고 세상은 극으로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지금 일출과 일몰같이 급박한(?) 변화 속에 놓여 있다.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 격랑의 높이와 속도에 적이 당황해하고 있다.

 

1990년 초, 필자는 일본 출장 중 일과 후 도쿄의 어느 포장마차에 들른 적이 있다. 6~7명 정도의 손님이 있었는데, 나와 직장동료, 일본인 2명, 국적은 모르나 백인과 흑인 등이다. 옹기종기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좁은 포장마차에서 옆자리 손님에게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나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이국적인 자리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나온 나는 동료와 포장마차 안에서 나의 어색했던 느낌, 일본 도쿄의 국제화된 모습, 수많은 물고기 떼가 노니는 맑은 시내 하천에 관해 부러워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난 후로 해외여행이 그리 자유롭지 못하고 외국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으며 내가 살던 광명시의 안양천 등 서울 시내 거의 모든 하천에는 검은 오·폐수가 흐르고 냄새가 진동하며 온통 모기가 들끓던 때였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는 서울 수도권 막론하고 하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 떼가 유유히 노닐고 있다. OECD 발표로는 외국인 비중이 5%를 넘으면 다인종 다문화국가로 분류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충청북도 어느 기초지자체 군 인구 중 16%가 외국인이다. 경기도 지자체 어느 시의 한 초등학교 학생 중 90% 이상이 다문화 가정 학생이다.

 

일상생활은 물론, 고용 시장 및 노동 현장, 교육과 문화, 시장 및 금융의 변화가 너무도 급박하게 닥쳐오고 있다. 그 결과 한국,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정체성 시비를 심심치 않게 경험하게 된다. 아무튼 그 변화는 앞에서 예로 든 일출과 일몰의 순간처럼 불쑥불쑥 다가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변화의 모습을 사안별로 차근차근 살펴보며 논의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다.

 

이웃이 달라졌다

“이 중에서 한국인은 누구인가요?”

실제 초등학교 다문화 학생(이주 배경 학생) 교육 시간에 사용되는 직업과 외모로 한국인을 가려내는 카드 질문이다. 인종과 직업을 그림으로 혼합한 4장의 카드에서 한국인이 어느 카드 속의 인물인지를 가려내는 질문이다.

 

정답은 '알 수 없다'로 외모와 직업으로는 한국인을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문화 학생이 많은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부모가 한국어에 서툰 가정을 대상으로 몽골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 외국어로 번역된 가정통신문을 제공하거나 여러 언어로 자동번역 되는 알림장 등을 제공한다.

 

정부의 정책 자료(2024. 10. 25)에 따르면 국내에 장기 거주한 외국인 주민 수는 총 246만 명 내외로 우리나라 총인구의 4.8%를 차지하고 있다. 이 통계는 불법 체류자, 3개월 미만 체류자를 제외한 2023년 통계로 현재 수치는 250만여 명을 넘어 총인구의 5%를 넘어섰을 것이다. OECD에서는 외국인 비중이 인구의 5%를 넘어서면 '다인종·다민족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아무튼 대한민국은 다인종·다민족 국가,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이제는 산업 현장, 농어촌, 대학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수단, 음식점, 마트나 병원과 같은 일상 공간에서도 20명 중 1명 정도로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시도 순위는 경기 81만 명 내외, 서울 45만 명 내외 순이다.

 

또한, 외국인 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시군구 순위는 안산(10만 8,033명), 화성(7만 6,711명), 시흥(7만 4,653명), 수원(7만 1,392명), 부천(5만 8,632명) 순으로 상위 5개 지역이 모두 경기도이다. 외국인 주민이 1만 명 이상으로 인구 대비 5% 이상 거주하는 시군구인 ‘외국인 주민 집중 거주지역’은 모두 127곳이다.

 

그리고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다문화 혼인은 2만 431건으로, 전체 혼인 중 10.6%를 차지한다. 다문화 출생아는 1만 2150명으로, 전체 출생의 5.3%에 달한다. 안산의 모 초등학교는 97.4%, 광주광역시 모 초등학교는 300여 명 재학생 중 60%가 다문화 학생이다. 여러 언어권별로 나뉜 문화가 존재하여 갈등이 많았고, 문화 차이로 정서적 교감이 어려우며, 언어 문제로 학습 능력이 저하되어 있어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래서 학교는 이주민 학생과 한국인 학생과의 화합을 위해 연간 교육 목표에 따른 주요 가치를 ‘공존’으로 정했다. 그런데 그 공존의 방법은 평화롭고 행복하고 정적인 ‘공존’이 아니라 갈등하고, 경쟁하며, 협동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알아감으로써 화합과 협력을 찾으며 지향하는 ‘공존’의 방법을 선택했다. 전제는 공존이라는 가치 실현을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포용력을 발휘해서 함께 사는 것으로 본 것이다.

 

공중파 방송, 케이블 방송에서도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대폭 편성하고 있다. 다문화 프로그램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러브 인 아시아, 이웃집 찰스, 다문화 고부 열전, 아빠 찾아 삼만리 등이 방송을 통하여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와 화해, 협력을 통한 공존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전국에서 다문화 학생이 30% 이상인 학교는 350곳이다. 경기도만 해도 5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시군구가 여럿이다. 식당 문을 들어서는 외국인이 “나마스테” 또는 “굿모닝” 하면, 함께 “나마스테“ 또는 ”굿모닝“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국경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

‘외국이 낳고 한국이 기른 음식’은 무엇일까요? ‘코리안 프라이드치킨’, 즉 ‘치킨’이 정답 중 하나이다. 치킨과 맥주의 콜레브레이션(collaboration) 작품인 ‘치맥’은 글로벌 식품이 되어 국내외 애주가와 식도락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음식뿐 아니라 가요, 영화 등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는 한국과 해외의 전문가들이 주요 부분에서 협업하거나 콘텐츠끼리 융복합을 이루어 다른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콘텐츠의 국가 벽이 무너지고 있어 국적을 따지는 것이 촌스러울 정도이다. K-POP 가요의 경우, 멜로디와 가사는 국내외 뮤지션이 함께 협업하여 만들고, 가수는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다.

 

가요의 진출 국가에 따라 댄서는 선발되고 일부 교체되기도 한다. 우리의 방송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복면가왕’은 포맷이 해외로 수출되어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방송되었다. 일본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 한국 감독이 만든 일본 영화가 한국, 일본에서 각각 개봉되고, 한국 영화제작사가 특정한 나라를 겨냥해서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는 일은 흔하다. 한국을 중심으로 한 문화 콘텐츠의 협업, 융복합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한국의 문화가 세계의 문화가 되고 해외의 문화가 한국의 문화가 되는 등 문화 콘텐츠 부문에서 국가의 벽은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할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문화 콘텐츠, 즉 K-콘텐츠의 세계화, 글로벌화는 진출 국가의 정서, 예를 들면 자존감, 국가 및 국민적 자주, 독립을 훼손치 않는 선에서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외국의 콘텐츠를 수용하는 데에는 신중히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좋은 콘텐츠를 잘 수용해서 우리 문화의 폭을 넓히고 심화시켜야 한다.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적인 것'에 대한 생각

한국인은 한국에 주로 거주하며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나 혈연적, 정신적으로 한민족에 속하는 사람이다. 한국은 단일 민족이 단일 국가를 형성한 세계의 몇 안 되는 나라이다.

 

한편 ‘한국의 정체성’은 일반적으로 역사, 문화, 정치, 사회의 여러 요소를 기반으로 형성된 고유한 특성과 특징을 의미하는데, 한민족의 전통과 가치, 대한민국의 헌법이 추구하는 이념, 그리고 현대사회에서의 역할과 방향성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한국인의 정체성에 기반하여 비롯된 것이 바로 ‘한국적인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인이 변하고 있고, 한국의 문화가 변하고 있고, 한국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한국의 정체성’,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변화시켜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한편, 우리 사회는 외국인 주민 수가 총인구의 5%가 넘어서고 있어 본격적인 다인종 다민족 사회에 진입해 있다. 다름에 대한 존중, 다양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태도가 적극적으로 필요한 때이다. 배려와 포용을 통한 ‘공존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한 행정, 복지, 교육,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새로운 사회 진입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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