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있는 책을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독서 이야기가 아닌 일상에 관한 반복적인 이야기를 긴 시간 나누는 것에 흥미를 잃기도 했고, 서로 주고받을 농담이 이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해서 오늘 직장 동기와의 모임에 안 갔어요. 너 나중에 후회한다는 협박을 받았는데 이러다 제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될까 봐 내심 걱정도 됩니다. 제가 왜 이런 걸까요?"
함께 독서 모임을 하는 친구가 이런 글을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오래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50대 중반인 그는 요즘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가 본격적인 책 읽기를 시작한 것은 이제 1년 6개월 정도.
그는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는 게 좋겠다 싶어 많은 검색 끝에 유명 작가와 하는 독서 모임에 참가했었다. 그곳에서 주로 권해준 책은 자기계발서. 독서 모임에 함께했던 이들은 젊은이들. 그는 그 모임을 통해서 2, 30대의 생각을 읽으면서 책 읽기에 빠졌다.
더욱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었던 그는 역시 검색 끝에 우리 시골책방에서도 독서 모임을 한다는 걸 알고 찾아왔다. 함께한 지 이제 9개월째. 그새 그는 유명작가의 독서 모임을 그만두고 더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를 읽어본 결과 결국 같은 내용의 반복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골책방의 독서 목록은 주로 문학과 인문 서적이다. 이 목록은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과 별개다. 책방지기인 내가 읽은 책 중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은 책을 나름 ‘엄선’해서 고른다. 그러다 보니 사실 책 고르기가 쉽지 않다. 책이란 것은 따지고 보면 대단히 개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내가 좋다고 해도 다 같이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내 취향대로 고른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을 고르면 독서 모임을 할 수 없다는 단순함이다.
최근 함께 읽은 책은 홍은전의 <그냥, 사람>이었다. 그는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말했었다.
“작가님, <그냥, 사람>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이 아프고 먹먹하고 눈물 나지만, 잊고 지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사람>은 장애인 야학교사였던 홍은전 씨가 강자에 의해 가려진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쓴 글로 꽤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책을 읽어서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책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1천 권 독서법>을 쓴 전안나 작가는 책을 읽고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 우울증을 극복한 것은 물론, 계속 글을 쓰는 작가가 됐으며, 연 수백 회의 강연을 하고 있다. 자신의 직업인 사회지도사를 그대로 하면서.
전안나 작가 같은 경우는 매우 특별하다. 책을 읽는다고 모두 다 작가가 되거나 강의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깊어지는 순간이 온다.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독서 모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변화되는 것을 느껴요. 나는 스스로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나의 빈 공간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답니다. 종일 책을 읽다 보면 어깨도 아프고 힘들죠. 다른 것도 하고 싶고. 그런데도 책을 읽고 있는 나 스스로가 대견하고,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자부심도 생겨요. 무엇보다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요.”
1년 6개월 동안 그가 읽은 책은 180여 권. 한 달 평균 10권을 읽은 셈이다. 적지 않은 권 수다. 이러다 보니 그는 급기야 친구들에게 야유 아닌 야유, 협박 아닌 협박을 받기도 한다. 그러다 오늘처럼 덜컥 겁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다 정말 내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모임에 나가자니 그곳에서의 수다가 지루하다. 자식 이야기, 아파트 시세, 주식 투자, 피부 관리, 맛집 등등. 그러다 주변의 아는 사람 이야기 등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들의 반복. 그렇다고 뜬금없이 책 이야기를 하기도 뭣하고. 사실 이미 그는 변한 것이다. 책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즐거운데 그 책 이야기를 맘 놓고 할 수 있는 곳은 독서 모임뿐이다. 그러니 독서 모임이 가장 좋을밖에.
나는 책 읽기는 혼자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 번도 독서 모임을 해본 적이 없다. 책방에 독서 모임이 있으면 좋다고 말할 때도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독서 모임을 하지 않을 이유는 할 이유보다 훨씬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정해진 요일마다 모임을 하게 되는 얽매임이 싫었다. 그리고 내가 뭔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책방을 책방답게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여전히 이곳에 누가 올까, 몇 명이나 올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시작한 독서 모임이 지금은 고정 회원이 생겼다. 그리고 독서 모임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매번 모임을 할 때마다 느낀다. 좋은 책을 읽었을 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늦게 깨달은 것이다.
내가 발견한 지점을 다른 사람은 미처 발견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독서 모임은 보다 입체적으로 책을 보게 한다. 토론 형식이 아니라 각자 읽은 감상을 말하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그러다 서로 다른 지점이 생기면 그것으로 또 서로의 생각들을 말한다.
사실 독서 모임은 무엇보다 내가 읽은 책 이야기를 어딘가에 가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좋은 책을 읽으면 이 책 좀 읽으라고 누군가에게 권해주고, 그 책 갖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사실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책 수다가 제일 즐거운 일인 것은 나도 독서 모임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하긴 책뿐 아니다. 영화나 음악, 그림 등 혼자도 좋지만,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 수다는 얼마나 즐거운가. 주변에 이런 것으로 수다를 떨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가장 부자가 아닐까. (그런 부자로 살고 싶다!)
책 조금 읽는다고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바뀔 수밖에 없다. 책은 너무나 다양해 어떤 책이 말을 걸어올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책과는 진하게, 어떤 책과는 가볍게 만나다 보면 어느 날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책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빠져 있는데 연예인 이야기며, 성형 이야기며,, 맛집 이야기가, 아파트 시세 이야기가 다 부질없을 수밖에.
물론 책만 읽다 보면 이걸 읽어서 뭐 하나, 역시 부질없는 순간도 온다. 그럴 때는 안 읽으면 그만이다.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볼 수 없는 것처럼 책은 너무나 많아 내가 다 읽을 수도 없는 일. 그리고 그쯤 되면 나는 예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는 각자의 때이므로 사실 아무도 모른다. 사는 일처럼. 그러다 어느 날 다시 책이 고파지면 쓱 집어 들면 그만이다. 책은 읽어도 읽어도 결코 마를 일이 없는 바다와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