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살 청년의 고백

시인 임후남은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사, 웅진씽크빅 등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2018년부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시골책방 '생각을담는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시골책방입니다', '아들과 클래식을 듣다', '아이와 여행하다 놀다 공부하다', '아이와 길을 걷다 제주올레'가 있고,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가 있다.

어느 날 오후, 스물셋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로 5번째 수능. 그러나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어 내년에도

수능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는 담담했다. 안쓰러운 마음을 그래서 내비칠 수 없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었다.

 

이제까지 다섯 번째예요. 다시 해보려고요. 힘드냐고요? 당연히 힘들죠.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죠. 학원에서 만난 사람 중에는 열 번도 넘게 수능 시험을 본 경우도 있어요. 그 사람은 군대에 안 가는 사람이어서 매년 시험을 봤지만, 저는 군대도 가야 하니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싶어요. 항상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험을 치르는데 올해도 마지막이 안 되네요. 내년에도 다시 해야겠어요.

 

부모님 때문이냐고요? 그렇긴 하지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넌 의대를 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의대를 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다행히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어요. 그렇다고 전교 1등을 하는 건 아니었고요. 그런 애들은 따로 있더라고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성적이 있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성적이 있어요. 그건 개인의 노력이 아니에요. 공부도 일종의 재능인 거죠.

 

학원과 과외는 당연하였죠. 학교보다 학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과외도 정말 중요하고요. 학원 안 가고, 과외 하지 않고 성적이 올랐다고 하는 말을 전 안 믿어요. 제 주변에서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거든요. 텔레비전에 나와서 우리 애는 과외 한 번 안 시켰다고 하는 유명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른들은 저렇게 거짓말을 웃으면서 하는구나 싶었죠. 그 집 애랑 제 친구랑 같이 고액 과외를 했거든요.

 

사실 재수, 삼수를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재력이 어느 정도 되기 때문이죠. 1년 학원비가 얼만데요. 거기에 과외라도 하게 되면, 어휴, 그건 진짜…. 월 3~400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제가 부모님께 감사하죠. 그 돈을 다 대주시니까요.

 

저희 부모님이 의사냐고요? 하하하, 아닙니다. 작은 학원을 하세요. 시험 끝나고 나서 부모님 학원 일을 조금 도와드리면서 우리 집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알았어요. 월 1천만 원쯤 되더라고요. 제가 아는 학원 강사는 월 3천인데, 그에 비해서는 적더라고요. 두 분이 버시는데도 말이죠.

 

월 1천이면 조금 큰돈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도 부모님은 적다고 푸념을 하시죠. 그 돈에서 아파트 대출금 갚고, 제 학원비 내고, 생활비 쓰고 나면 돈이 없다고 하세요. 그리고 두 분은 돈 때문에 자주 다투시죠. 매일 돈 돈 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부모님을 보면 제가 죄인 같죠. 빨리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학원비나 축내고 있으니 말이에요. 부모님으로서도 제가 탐탁지 않으실 거고. 저한테 욕도 하시거든요. 어떤 때는 때리기도 하시고. 그러다 보니 제가 상처를 많이 받죠.

 

 

 

그래도 지금은 많이 포기하셨어요. 어떤 데도 좋으니 의대만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시거든요. 처음엔 서울에 있는 의대만 고집하셨거든요. 그래도 쉽지 않네요.

 

저는 부모님 모두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몰라요. 굳이 말씀을 안 하시니 제가 물어볼 수도 없지요. 당신들이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 저는 그렇게 힘든 인생을 살지 말라고. 그러니 의대 가서 의사가 되라고 하는 거라고 하세요. 의사는 돈을 많이 벌잖아요. 만약 부모님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할아버지가 부자였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죠. 부모 찬스를 쓸 수 없는 우리는 성적을 올리는 수밖에 없어요.

 

사실 전 지금 휴학 중이에요.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을 다니고 있어요.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른 부모님 같으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전액 장학금이니 좋아하시려나요? 그런데 의대가 아니어서 한 학기만 대충 다니고 다시 학원에 다녔어요. 그런데도 이번에도 안 될 듯하니, 참 저도 안타깝네요.

 

제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거예요. 30억을 버는 게 제 목표예요. 30억이면 부자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요? 글쎄요. 뭘까요.

 

지금 제 나이가 스물셋인데요, 술을 먹어본 게 10번도 안 돼요. 술집에 가본 게 그만큼인 거죠. 또래 친구들이 대학을 가고, 술집에 가고, 여행을 갈 때 전 학원에서 공부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모태솔로네요. 한 번도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어요. 재수학원에서도 애들끼리 사귀던데 전 여자애들한테 눈 한 번 돌려본 적이 없었어요. 오직 공부만 했어요.

 

코로나 이전에 가끔 친구들이 외국 여행 갔다 왔다고 하면 좀 부러웠어요. 전 외국은커녕 국내 여행도 한 번 가본 적이 없거든요. 어렸을 때도 여행을 간 기억이 없어요. 매일 집과 학교, 학원, 아니면 과외 선생님 집이 전부였죠.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여행을 가자고 했어요. 애들이 방학 때면 외국 여행을 갔다 온 게 부러웠거든요. 그렇지만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한 번 안 가고 제가 어른이 되었네요. 그동안 우리 아파트 평수는 넓어졌어요. 처음에는 20평대였는데 지금은 40평대니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아파트값이 20억도 넘네요. 곧 30억을 찍겠죠. 아파트값이 올라서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전 외동이에요. 형제자매가 없으니 나눌 것도 없고. 친구 중에 형제자매가 있는 애들은 가끔 절 부러워해요. 혼자라서 외롭기도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운이 좋은 거죠. 어쨌든 물려받을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까요.

 

의대가 아니면 그 어떤 대학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님.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저. 가끔 박차고 나오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런데 부모님 꿈이 제 꿈이 되고, 이 길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일단 내년에 다시 해보려고요. 괜찮아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지요.

 

 

어느 날 오후, 스물셋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로 5번째 수능. 그러나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어 내년에도 수능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는 담담했다. 안쓰러운 마음을 그래서 내비칠 수 없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었다.

 

그의 말처럼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그의 부모는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사다리 한 칸 올라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 그들은 아들이 조금은 더 안전한 사다리를 타게 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의대를 고집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간신히 올라간 사다리에서 떨어질까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여행 한 번 가지 못하고, 가장 투자를 많이 하는 자식은 뜻대로 안 되고. 그러다 보니 화가 쌓이고, 그 화는 결국 가족 간 충돌로 이어진다.

 

스물셋 청년은 순하다. 부모에게 순종한다. 부모가 자신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그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의 부모가 궁금했다. 자식을 그렇게 몰아붙이는 이유가 뭘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아들이 의사가 되어 돈을 잘 벌게 될 미래에 그들이 나를 향해 던질 비웃음이 그대로 꽂힌다. 너나 잘하세요, 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 곁을 스쳐 간 그와 같은 이들의 얼굴이 참 많았다. 그렇지, 무슨 상관이람.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살아갈 뿐인 것을. 서로 방향이 다른 것을.

 

그래도 긴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는 그에게 말했다. 언제고 쉬고 싶을 때는 오라고. 그에게는 이 낯선 책방이 잠깐 동안의 쉼이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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