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받고 싶은 오해

필자 석인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1974년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하면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TBC 방송기자, 중앙일보 싱가포르 특파원, 중앙일보 사회부 전국부장 등을 거쳤다. 국정홍보처 국정브리핑팀 위원과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2014년 '좋은수필'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그런 아름다운 오해를 받을 일이 이제는 다시 

안 생길 것 같아 서글퍼진다. 

그래서 그런지 대전 시절의 그 일이 더욱 새롭게 떠오른다. 

그 시절 함께 손잡고 걸었던 그 동갑내기 누나도

이젠 며느리를 둘이나 맞은 70살 할머니가 됐으니.

 

 

혈기 방자했던 20대 후반 어느 날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아무런 동기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 일이 왜 생각이 나는지는 모르겠다. 이럴 땐 그저 ‘사노라면 가끔 그런 생각도 날 수 있다’는 말에 책임을 돌릴 수밖에. 그날은 일요일 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젊고 아름다웠던 날의 이야기 같아 혼자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 시절 나는 선배 세 분과 함께 대전에서 근무 중이었다. 당시 총각이었던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일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잘 놀았다. 지방 근무는 층층시하인 본사와 달라 유형무형의 각종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곳이 고향인 사무실의 선배들과 달리 나는 객지여서 하숙을 했다. 나는 객지 생활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본사와 달리 비교적 일거리가 적어 퇴근 후 선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시간이 참 많았다.

 

그러던 차에 그날 오전 하숙집에서 나오다 사무실 선배를 만났다. 내 하숙방은 방이 여러 개 달린 여관 형태의 3층 건물 1층에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늦은 아침밥을 먹으러 나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내 옆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다정하게 손까지 잡고 걸어 나가다 만났다. 선배는 내게 아는 체를 하려다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못 본 체 하고 지나갔다. 그러는 선배를 불러서 인사하고 옆의 여자를 소개했다. 선배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묘령의 여인이 누구며 어떤 관계인가를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이미 사무실에 알려진 상태라 다른 두 선배도 덩달아 의심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야말로 내 말은 믿으려 하지를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네들이 생각하는 방향의 얘기만 들으려고 했다. 말하자면 결혼할 애인이라든가, 아니면 새로 꾀어서 사귀기 시작한 여인이라는 등의 답변만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제 누나라니까요!”

“에이, 여보시오. 그럴 땐 누구나 그렇게 말하는 줄 내가 모를 줄 아시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런 말을 거짓말이라고 해요. 어쨌든, 미인이던걸요. 부럽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런 식으로만 받아들이려 했다. 참 답답했지만, 그들은 끝내 믿어주지를 않았다. 나도 포기하고 더 이상 강변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던 갈릴레오의 심정이었다. 그 이상한 오해는 결국 내가 대전근무를 마칠 때까지 풀리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여관에서 함께 나오다 선배와 마주쳤던 예뻤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왜 하필이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 수 있을 일요일 오전에 여관에서 나오게 됐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런 상황을 목격했더라도 그 선배들과 똑같은 의심을 할 만했을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나는 친사촌이 없고 고종사촌과 이종사촌 형제들만 있다. 아버지는 남매만 자란 외아들이었다. 이모님은 두 분이 계셨는데 모두 어머니의 언니다. 그중 큰 이모님 네 이종형제와는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쪽 형제들이 나보다 나이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작은 이모님은 딸만 넷 두셨는데 막내딸이 나보다 생일이 불과 한 달 빠른 누나였다. 나는 형님만 세 분 있고 누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방학 등 틈만 나면 그 동갑내기 누나와 어울려 놀며 자랐다.

 

그랬던 그 누나가 3년간의 파독 간호사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 나를 만나러 대전까지 온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사이좋게 자랐던 사촌이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본사와 연락할 일도 없어 나는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정말 다정한 연인들처럼 손잡고 음식점으로, 동학사 등 유원지로 쏘다니고 하숙하는 여관에서 함께 잤다. 그리고 일요일이라 느지막하게 함께 아침 식사할 음식점을 찾아 나가다 선배를 만난 것이다.

 

그 누나는 미인이셨던 이모님을 닮아 정말 예뻤고 몸매도 남에게 자랑할 만했다. 게다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한 탓인지 스스럼없이 내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 다녔다. 40여 년 전이었던 당시로서는 20대 청년과 예쁜 아가씨가 거리에서 손잡고 걷는 것은 상당히 놀랄만한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을 우리가 했으니 누가 봐도 수상한(?) 관계로 오해받을 만 한 일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오해를 받을 일이 이제는 다시 안 생길 것 같아 서글퍼진다. 그래서 그런지 대전 시절의 그 일이 더욱 새롭게 떠오른다. 그 시절 함께 손잡고 걸었던 그 동갑내기 누나도 이젠 며느리를 둘이나 맞은 70살 할머니가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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