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에서 좋다, 좋다 말하면서 사는 이유도 그렇다.
시골을 선택하고, 책을 선택하고, 커피를 선택하고,
음악을 선택하고, 나무를 선택하고 하는 것들.
즉 내가 좋은 것을 선택하니 좋을밖에.
그들이 떠난 후에야 나는 안으로 들어왔다.
비로소 세상이 편안해졌다. 책방에서의 언어, 책방에서의
대화가 나를 행복하게 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손님은 종일 그들이 전부였다.
손님이 왔다. 그들은 커피를 주문하고 책방을 쓱 둘러봤다. 분위기가 책에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에 집중했다. 손님이 오면 나는 내 책상에 앉아 일한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손님들의 대화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중년의 여성과 남성 4명은 목소리가 컸다. 한 사람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이 커피 한 잔 값으로 주식을 사면 10년 뒤, 20년 뒤 인생이 달라지는 거야.”
순간 그동안 내가 마신 커피값으로 만약 주식을 샀다면, 생각했다. 30년도 더 커피를 마셨으니 커피를 마시지 않고 그 돈으로 주식을 샀다면 나는 얼마나 큰 부자가 되었을까. 큰 부자가 되어 나이 든 내가 이제부터 커피를 마셔야지, 한다면 나는 아마 값비싼 커피를 마시겠지. 커피값도 모르면서 무조건 비싼 것으로 마시겠지. 그러자 그동안 마신 커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눈앞에 나타났다.
맥스웰 분말 커피, 초이스 분말 커피 등의 커피 브랜드가 맨 처음 떠올랐다. 설탕 몇 스푼, 프리마 몇 스푼씩 해서 먹었던 달달한 커피들. 이후 출근해서 마시기 시작해 퇴근할 때까지 뽑아 먹던 자판기 커피들. 그러다 핸드드립 커피숍을 찾아다니고, 혼자 내려 마시고, 드디어 한국에 상륙한 스타벅스에 열광하고, 캡슐커피머신도 구입하고, 200그램씩 이런저런 볶은 콩을 사다 융 드립까지 해서 마시고......
내가 잠깐 커피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그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주로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였다. 나는 커피 생각에서 빠져나오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에서 할 일이 쌓여 있었지만 더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와 마당을 걸으며 하늘을 보고 소나무를 올려다봤다. 연잎도 좀 보고, 수국도 좀 보고. 그러다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투자를 하고, 서울 아파트를 산다고 했다. 그런 일은 그냥 ‘뉴스의 일’이다. 시골에서 책방을 하면서 누구와도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북카페라고 찾아온 손님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제야 책방에서의 대화, 책방에서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방에서의 언어는 ‘책’에서 비롯된다.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관련 책이 있다면 그곳에서부터 또 언어가 시작되겠지만, 시골 책방에는 없다. 시골 책방에는 책이 다양하지 않다. 책을 조금밖에 갖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읽고 싶은, 관심 있는 책만 갖다 놓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대로 서점의 색깔이 된다. 재테크에 열심을 부릴 것 같았으면 시골에 책방을 차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골 책방에서의 언어는 ‘자연’에서 비롯된다. 시골 마을 끄트머리에 있고, 소나무숲이 있고, 개울이 있고, 멀리 산이 보인다. 더 많이 하늘이 보인다. 바람은 또 얼마나 자주 부는지.
대화는 그런 단어들로 시작된다.
이 소설을 읽고 잠을 못 잤다, 책을 읽다 눈물이 났다, 이 책을 보면서 누구 생각이 났다, 이렇게 두꺼운데 읽을 수 있을까, 이 책은 혼자 읽기 아깝다 등등. 그러다 바람이 너무 좋다, 배추가 잘 자란다, 물소리가 좋다, 어머나, 구름이 아름답다 등으로 이어진다.
이런 말을 하면서 누군가와 비교하고, 시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보다 더 좋은 차를 탄다고 해서 부러울 것도 없고, 아파트값이 올랐다 덜 올랐다고 말할 것도 없다. 명품 브랜드 상품을, 고급 레스토랑 메뉴를 말할 것도 없다. 어쩌면 자신도 모른 채 살아가는 자신의 맨 모습을 그대로 만나는 곳일지도 모른다.
우리 책방에 와서 독서 모임을 하는 사람이 <시골책방입니다>를 읽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골책방입니다>에 나오는 이야기는 나의 현실과 너무 다르다. 솔직히 돈 버는 것에 독이 올라 살아간다. 내 주변 사람들 모두 그렇다. 책 속 이야기가 픽션 같다. 물론, 있는 이야기를 썼겠지만,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바쁜 중에도 월요일 이 시간에 오고, 심지어 책을 읽지 않은 날도 그냥 오는 이유는 이곳이 내게 현실 도피처이기 때문이다.”
<시골책방입니다>는 내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들과 내가 나눈 대화는 누군가가 보기에 ‘픽션’ 같은 것이다. 현실에서 부대끼면서 사는 세상이 아닌, 잠시 낯선 세상이 이 시골 책방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좋다, 좋다 말하면서 사는 이유도 그렇다. 시골을 선택하고, 책을 선택하고, 커피를 선택하고, 음악을 선택하고, 나무를 선택하고 하는 것들. 즉 내가 좋은 것을 선택하니 좋을밖에.
그들이 떠난 후에야 나는 안으로 들어왔다. 비로소 세상이 편안해졌다. 책방에서의 언어, 책방에서의 대화가 나를 행복하게 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손님은 종일 그들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