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논산-전주-완주 여행기
▲전통 기와집의 멋과 풍취를 그대로 간직한 전주 한옥마을.
전주의 맛과 멋, 한옥마을
논산의 명재고택을 뒤로하고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호남의 고도 전주로 갔다. 남도의 풍류와 한옥의 아름다움, 맛있는 음식이 손짓하는 유서 깊은 도시다. 시간은 벌써 오후 1시가 지났다. 맛의 본고장에 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미를 놓칠 수야 없다. 전주의 명소 한옥마을엔 수많은 맛집이 있지만 우리는 비빔밥의 명소로 알려진 집을 찾았다. 빈 좌석을 찾아 앉았지만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린 보람은 컸다. 전주비빔밥의 명성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임을 실감했다.
▲전주시 한옥마을의 경기전 담장위에 곱게 핀 배롱나무꽃.
식사 후 비빔밥 맛의 여운을 안고 근처의 경기전 담장을 따라 걷고 건축된 지 100년이 넘었다는 전동성당도 구경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진본 어진이 보관돼 있었던 경기전은 조선왕실의 상징적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진본 어진은 서울로 옮겨가고 지금은 사본이 모셔져 있단다. 전동성당은 외관의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수리 중이어서 전부 가림막에 가려 있었다. 다만 성당 내부는 입장이 가능해 화려한 장식의 본당 천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한옥마을 골목골목엔 한복을 차려입은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그렇지만 밀려가고 밀려오는 인파로 붐볐다던 명성은 코로나19 여파 때문인지 느낄 수가 없었다. 예약해 둔 호텔로 가서 여장을 풀고 쉬었다. 호텔에서 한 시간쯤 쉬고 오후 5시쯤 전주시 외곽의 혁신도시 지역까지 드라이브를 즐겼다. 해가 막 서산으로 넘어가려 할 때 낙조의 명소 오목대(梧木臺)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구름이 너무 짙어 아름다운 낙조는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어둠이 짙어지는 오목대 언덕에서 전등 불빛들이 반짝이는 한옥 거리를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휘황찬란한 각종 조명이 불을 밝힌 한옥마을의 골목골목을 걸었다. 거리는 낮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몇 줄의 글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전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맛집을 찾아 즐기는 것이다.
한옥마을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다 43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수 전문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방문자 발열 체크와 기록이 철저했다. 그래도 길게 줄지어 늘어선 손님들이 이 집의 명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도 한참을 기다려 뒷방의 한 식탁에서 뜨끈한 칼국수와 만두를 맛있게 먹었다. 이어 막걸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딸이 맛있는 전집으로 안내, 푸짐한 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로 2차를 즐겼다. 전집을 나와 상쾌한 전주의 밤공기를 마시며 한옥마을 구석구석을 두루 구경하고 호텔로 들어왔다. 그렇지만 그냥 잠자기가 아쉬워 16층짜리 호텔의 옥상 라운지에서 전주시 야경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씩을 더 즐겼다.
전주 콩나물국밥과 완주군 아원고택
호텔에서 가까운 맛집 ‘왱이콩나물’ 국밥집에서 속 풀이 겸한 식사를 했다. 양도 푸짐했지만 칼칼하고 담백한 맛이 좋았다. 그런데 간판에 씌어있는 ‘왱이’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왕을 뜻하는 전라도와 충청도의 방언일까? 어쨌든 이 한옥마을거리에서 맛 본 비빔밥, 칼국수, 전, 콩나물국밥은 정말 자신 있게 추천해도 될 것 같다.
▲완주군 소양면의 아원고택으로 들어가는 아원갤러리.
식사 후 완주군 소양면 심심산골에 있는 아원고택으로 달렸다. 이번에도 운전대를 딸이 잡았다. 딸은 젊은이답게 한 시간쯤 신나게 지방도와 국도를 달려 고택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고택 바로 옆엔 민박하는 오성 한옥마을과 소양 고택도 있다. 아원고택을 보려면 아원갤러리 입장권(1만원)을 사야 한다. 개관 시간을 기다리며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이 카페는 높은 축대를 쌓아 올려 조성한 멋진 잔디정원과 수면이 거울처럼 보이는 매우 긴 수조가 있다. 이날은 바람이 한 점도 없어 흔들림 없는 수면에 맞은편 산이 거꾸로 비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곳은 사진 촬영 명소로 소문이 났다. 이를 반증하듯 ‘BTS가 이곳에서 앨범을 촬영했다’는 안내판이 입구에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 깊은 산골에 이처럼 멋진 정원과 카페를 만든 사람의 안목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카페를 나와 아원고택으로 통하는 갤러리에 들어갔다. 사방이 시멘트벽이어서 장중한 분위기였다. 입구 쪽엔 야트막하지만, 폭이 꽤 넓고 긴 직사각형에 물이 흐르고 있어 이것을 피해 돌아서 들어갔다. 물 옆엔 나무 모양의 조각이 서 있고 벽에는 몇 점의 대형 유화가 걸려 있었다. 작품의 뜻은 알 수가 없었지만 매겨진 가격을 보고 놀랐다. 일억 원에 가까운 것도 있었으니까.
▲고택 부속채의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아원고택은 한 폭의 동양화였다.
갤러리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아원고택이 나온다. 그러나 대나무 숲으로 된 터널 길을 통해 돌아가야 고색창연한 한옥 기와집 마당에 닿는다. 이 집도 높다랗게 석축을 쌓아서 지었는데 다른 지방에 있었던 고택을 이전한 것이란다. 네 칸짜리 기와집 두 채와 조그만 부속 건물 한 채가 조화롭게 지어져 있고 석축이 높아 전망도 절경이었다. 나로서는 그 고택의 아름다움이나 의미를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시원한 부속건물의 대청마루에 앉아서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는 즐거움만으로 충분했다.
초가을의 산속 공기가 한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때 고택을 떠나 사흘간의 추석 연휴 여행을 마쳤다. 귀경 길에 세종시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딸만 남겨두고 떠나왔다. 상경 길 고속도로가 심하게 막히긴 했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