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귀를 반지에 넣으시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승리에 도취한 순간에도 이 글을 보게 되면
전하께서는 자만심을 가라앉히실 수 있을 것이요,
또한 절망 중에도 이 글을 본다면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사울(Saul)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다. 그때가 대략 BC 11세기 초. 여러 부족을 정복하고 막강한 힘을 과시한 사울 왕은 후계자로 다윗(David)을 지목한다. 다윗은 베들레헴 출신 이새(Jesse)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새는 교회나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이새의 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 나뭇가지에 여호와가 강림한 것이 ‘예수(Jesus)’라고 믿는다.
이새가 아들 덕분에 더 유명해진 일화가 있다. 어린 양치기 다윗이 앙숙인 이웃 나라 필리스티아(Philistia,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의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이야기다. 대충 불곰 크기의 거인 골리앗의 이마에 돌멩이를 던져 쓰러뜨린 뒤 칼로 목을 베었다고 전한다. 아들 다윗은 이스라엘을 재통일하여 왕이 되고, 다윗의 골리앗 제압은 그리스도의 이스라엘 입성을 예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다윗 왕은 궁중 세공인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나를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어다오.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두어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차분하게 다스릴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도록 하라. 또한 내가 큰 절망에 빠졌을 때는 용기를 줄 수 있는 내용도 함께 담아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게 해줄 ‘수신(修身)’의 글귀가 새겨진 반지 하나를 만들도록 명령한 것이다. 배움이 모자란 세공인은 다윗왕의 지시를 받들만한 글귀를 생각다 못해 지혜로운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서 한 말씀 부탁했다. 그러자 솔로몬은 세공인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
“이 글귀를 반지에 넣으시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승리에 도취한 순간에도 이 글을 보게 되면 전하께서는 자만심을 가라앉히실 수 있을 것이요, 또한 절망 중에도 이 글을 본다면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역자(譯者)에 따라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라고도 씀)
소중한 것들이 네 눈앞에서 사라져 갈 때
그 힘겨운 순간마다 그대의 마음에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And Dearest Things are Swept from Sight Forever,
Say to Your Heart Each Trying Hour :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글귀를 집어넣어 쓴 19세기 미국의 여류시인이자 음악가 렌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의 시(詩)를 통해 우리는 3000년 전 솔로몬의 지혜를 접해본다.
올해 95살의 고령인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과 관련해 불안해하는 영국인들을 격려하면서 “후세가 우리를 매우 강인한 사람들로 기억할 것(Those who come after us will say the Britons of this generation were as strong as any)”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전히 더 견뎌야겠지만 더 나은 시간이 돌아올 것”이라며 “친구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초여름 템스강변의 윈저성에서 BBC방송을 통해 녹화 방영한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여왕은 현시기를 “어떤 사람들에게는 슬픔이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의 삶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혼돈의 시기”라고 규정하면서 자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라.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생전에 법정 스님이 한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