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도 하다.
생각하면 20년을 거스르는 아득한 시간인데 또한 그렇지도 않다.
어쩌면 나는 시간을 할인하는 천재인지도 모른다.
가능만 하다면 20년의 시간을 통째로 할인한들 그건 또 어떠랴.
그때 그 결별(訣別)의 시간에는 손 한번 흔들어주지 못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은 늘 그 모습으로 그렇게 있었다.
아득한 꿈의 정류장.
그곳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조그맣고 허술한 간이역이다.
다만 그 한 사람, 떠나고 보내야 하는 설움마저 삼켜야 했던, 그 사람이 거기 서성이고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아니 20년의 시간이었지.
20년의 강물이었지.
창백한 얼굴의 그 모습으로 그렇게 거기에 그 사람이 있었지.
침묵하면서.
그 사람의 옷자락엔 아직도 시린 시월(十月)의 그 바람이 묻어있다.
그래, 지금은 아무것도 말하지 말자.
이대로가 좋다.
우편배달부가 던지고 간 봉함 편지엔
아무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빈자리에 무덤처럼 치쌓인
침묵의 언어,
나는 지금 그것을 듣는다.
내 머릿속에 울려오는 무궁한 그 음성을 듣는다.
이 세상의 끝과 시작의 언어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의 침묵
그것이 동질의 것임을
나는 안다.
실존주의 책갈피에 구겨 넣었던
스무 살의 침묵은
마흔 살의 응혈로
아직도 무겁게 잠겨있구나.
그래, 지금은 아무것도 말하지 말자.
이대로가 좋다.
도시는 어둠 속에 잠들고
나는 안개에 젖는다.
나의 감수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여리고 어설프다.
군데군데 풋과일처럼 떫은맛도 난다.
그리움을 색깔로 나타낸다면 무슨 색깔일까.
초록색,
아니, 초여름 햇살에 아른아른 무늬 지는 신록의 색깔이지.
그럴까.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우기었다.
나는 그처럼도 어리석고 실하지 못하였다.
어디 한구석 꽉 찬 데라고는 없어 다분히 몽환적인가 하면 그 몽환마저도 리얼리티가 없었다.
리얼리티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뜻하는가.
그 때문에 많은 것들을 잃고 살았던 것인가.
많은 것을 잃었던 때문에 더 잃을 것도 없는 것만 같다.
생각할 때는 가슴이 막막해진다.
참혹한 심사이다. 더 할 수 없이.
그리움을 말하려고 한다.
(그래도 나는 아직 그리움을 말할 수 있다)
그때 그 아른아른 무늬 지는 신록의 색깔이라 말했던 그리움을 말하려 한다.
그것이 얼마나 작위적이었던가는 그 사람을 보내고 나서, 그러고도 여러 해의 가을, 여러 해의 겨울을 견디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 작위적이다.
그토록 진부한 수사(修辭)가 지금은 부끄럽다.
그리움을 말함에 가슴 떨지 않고 말할 수 있었던 그 방일(放逸)함이 두고두고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그립다는 말이 눈물겹게 가슴에 와닿던 때가 있었다.
사무치는, 그리하여 가슴 밑바닥에 소리도 없이 괴어 있다가 소리 없이 끓어오르는 간절한 그리움, 어쩌면 아-하는 탄식마저 삼켜버리는 안타까운 그리움.
그리움의 그 사람,
때 없이 밤거리의 가로등 밑을 서성이며 밤의 시시각각을 껴안아 보는 그 목메임.
아아- 그리움의 실체는 무엇이기에 이만치나 안쓰럽고 이만치나 뼈에 사무침인가.
빈 거리를 상처 입은 몸으로 지향 없이 헤매는 때 나는 또 생각한다.
사무치는 그리움이 아무리 진한들 보고 싶음만이야 할까.
다만 보고 싶다.
눈이 아프도록, 눈 안 가득히,
바람결에 묻어서 바람으로,
또는 별빛에 실리어 별빛으로 다만 보고 싶다.
그리움도 겹거늘 그리움 너머에 더한 보고 싶음이 몸 숨기고 있음을 어찌 알았으랴.
거기에는 밤을 서성댈 여유마저 없다.
흡사 39도 8부쯤의 고열에 입술은 타는 듯하고 가슴은 불을 지핀 듯 펄펄 끓고 뜨겁기만 하다.
보고 싶음에 눈이 아프고, 보고 싶음에 눈이 먼 듯 온 세상이 뿌옇게 흔들리고, 그대로 시력을 잃는 것이 아닌가 싶던 때도 있었지.
눈 안 가득히 그 사람을,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그저 다만 그 사람을 보고 싶음, 아니 바라보고 싶음인 것을.
참 사람에게는 잊음의 묘방(妙方)도 있다 하지 않던가.
또 그 잊음의 묘방에는 시간이 약이라 했지.
그러나 이만한 세월인데 모두 잊고 모두 지우려 해도 아니 잊히고 아니 지워지는 그것은 무슨 병인가.
그것을 불망(不忘)의 병이라 이르는가.
정녕 불망의 병일진대 그것에는 시간이 약일 수도 없거니, 따로 어떤 묘방이란 게 있을 법하지도 않다.
그저 마냥 가슴 시리고 눈 아픈, 돌이킬 수 없는 불치의 병, 어쩌면 그것은 새벽 별빛이 얼마나 영롱한 눈짓으로 소멸하는가, 새벽이슬이 어떻게 그 눈짓에 화답하는가, 그 눈짓, 그 화답만큼이나 정결하고 마음 태우는 소망의 병일 터이다.
내 아득한 꿈의 정류장에서 앓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