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익는 마을

필자 석인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1974년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하면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TBC 방송기자, 중앙일보 싱가포르 특파원, 중앙일보 사회부 전국부장 등을 거쳤다. 국정홍보처 국정브리핑팀 위원과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2014년 '좋은수필'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참 곱기도 했다. 그 어떤 홍보석보다도 더 굵고 아름다웠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고 여러 개가 무리 지어 뽐내고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 말고도 몇 사람이 더 그 홍보석들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그것은 주택가 담장 밖까지 나와 익어가는 새빨간 석류였다. 가지가 휘어져 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마치 붉은 꽃다발처럼 느껴졌다. 그 중의 몇 개는 알밤처럼 껍질이 벌어져 속에 있는 석류알들이 루비처럼 보였다.삭막한 서울 도심의 주택가에서 그처럼 귀한 보석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며칠 전 남산자락의 후암동 주택가를 지나다 그 석류들을 보았다. 그곳은 아직도 일본식 목조가옥들이 많이 남아있다. 남산으로 이어지는 상당히 경사진 주택가의 골목은 매우 좁아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다. 그 경사진 골목길을 지나다 빨간 석류들이 주렁주렁 달린 집을 본 것이다. 넓지 않은 마당에서 자란 석류나무는 수령이 매우 오래된 것 같았다. 밑 둥이 굵은 데다 무성한 가지가 높이 자라 지붕 위까지 뻗어있었다. 그 중 한 가지는 담장 너머 밖에까지 나와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꽃나무처럼 보였다.

 

우리나라 기온이 높아지면서 추위에 약해 예전엔 보기 힘들었던 남쪽 지방 과일들이 요즘은 서울에서도 잘 영근다. 그 중에서도 노란 감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은 이제 서울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목에 주렁주렁 달려 새빨간 모습으로 익어가는 석류는 좀체 보기 힘든 풍경이다. 석류나무는 감나무나 사과, 배나무 등에 비해 더 추위에 약하고 드물기 때문이다. 그 석류를 보는 순간 나는 아주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어느 새 나는 그 석류들 너머로 스쳐 가는 내 고향집 뒤 안의 석류나무 밑을 맴돌고 있었다.

 

▲석류가 익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감나무 사진이다.

 

내 어렸을 적 고향 집에는 30년이 훨씬 넘은 커다란 석류나무 몇 그루가 한곳에 비스듬히 모여 있었다. 가을이 되면 그 나무들은 온통 붉은 석류들로 불붙곤 했다. 석류는 꽃봉오리도 꽃잎도 모두 새빨갛다. 그리고 처음엔 파랗게 커가던 열매들이 익으면 다시 새빨개지고 그 안에 소복소복 들어 있는 씨앗들 또한 빨강 그 자체다. 맛은 무척 시어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일 정도다. 그렇지만 그토록 시면서도 단맛이 함께 나는데 석류의 묘미가 있다. ‘시거든 떫지나 말라’는 말은 있다. 그렇지만 ‘시거든 달지는 말라’는 말이 없는 건 사람들이 새콤달콤한 석류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나는 석류에 얽힌 즐겁지 못 한 추억이 두 개나 있다. 하나는 무척 혼이 났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크게 다칠 뻔했던 일이다. 혼났던 일은 어느 늦은 여름날 밤에 일어났다. 내 고향은 남쪽이라 석류나무 한두 그루씩 있는 집이 많았다. 나를 혼나게 했던 그 석류나무는 우리 집에서 세 번째 집 담장에 붙어있는 우물가에 있었다. 높게 잘 자란 그 나무는 담장 밖으로까지 가지가 뻗어 있었다. 해마다 석류들이 많이 탐스럽게 열렸다.그 바람에 동네 조무래기들은 석류가 익어갈 때쯤이면 담장 밖으로 나온 석류들에 눈독을 들였다.

 

6학년 때의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어느 날 밤이었다. 붉게 익어가는 석류가 조무래기들을 유혹하는 때였다. 어둠이 짙어지자 조무래기들이 석류나무 아래 모였다. 우리는 키기 작아 석류에 손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 람이 상대방의 어깨를 맞잡고 선 위에 내가 올라가 석류 가지를 몇 개 통째로 꺾었다. 대충 하고 말았어야 했는데 욕심을 부려 많은 가지를 꺾는 바람에 들키고 말았다. 우리는 번개처럼 도망갔지만 한 친구가 잡히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 나는 어느 집 헛간에 숨어 잡히지는 않았지만, 밤이 이슥할 때까지 나를 잡으려는 석류나무집 누나의 성난 목소리에 떨어야만 했다. 그 누나는 내가 숨은 헛간 앞까지는 왔지만 나를 발견 못 해 결국 우리 집에 일러주었다. 그 바람에 그날 밤 늦게 집에 들어간 나는 엄마한테 무척이나 야단을 맞았다.

 

다칠 뻔했던 일은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해 늦가을 날 일어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같은 마을에 사는 작은 집 숙모가 와 계셨다. 나는 숙모의 부탁으로 뒤 안의 석류나무에 올라가 잘 익은 석류 몇 개를 따 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석류는 가지의 끝부분에 대부분 열려 있었다. 조심조심 가지 끝 쪽으로 가서 손을 뻗치려다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함께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돌멩이가 없는 땅바닥이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몇 군데 석류 가시에 할퀴고 타박상도 입어야 했다. 어린 마음에 무척 놀랐던 일이었다. 그 당시 숙모님은 임신 중이었던 것 같았다.

 

지금 고향 집의 그 석류나무는 없어진지 오래다. 나무가 모두 죽어 베어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엔 아직도 그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해마다 빨간 석류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있다. 올 가을 서리가 올 때쯤 그 석류들을 따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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