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와 ‘잊힐 권리’

  • 포천좋은신문
  • 2020.09.04 12:13:04

필자 정영수는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군대에서는 미군 통역장교를 지냈다. 신문사 입사 후 평생 언론인의 길을 걸었고, 중앙일보 편집부국장으로 퇴직했다. 전국 편집기자들의 모임인 한국편집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

인신매매와 포르노 금지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만 엔(円)의 약식 명령을 받은 한 남성의 이름과 주소가 3년 동안이나 인터넷에 계속 떴다. 이 40대 일본인 남성은 법원에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했다. 일본 사이타마(埼玉) 지방법원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의 삭제를 요구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특정인에게 불리한 개인정보의 삭제 요구에 대해 '잊힐 권리'를 명시하고 삭제를 인정한 것은 일본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법원은 “범죄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과거의 범죄사실이 사회에서 잊힐 권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성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사이타마 지방법원이 "갱생에 방해받지 않을 이익을 침해받고 있다"며 삭제를 명령했고, 검색사이트 ‘구글(Google)’ 측은 ‘알 권리’를 내세워 법원에 결정 취소를 요구한 상태다. 구글의 가처분 신청과는 상관없이 현재 남성의 체포 기록은 검색에서 더 이상 나오지는 않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의 경우 '온라인상에서의 잊힐 권리'를 인정하고 피해가 우려되는 개인정보의 삭제를 명령했으나 구글 측은 58%의 삭제 요청을 거부했다. 아동 성폭행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프랑스 사제(司祭)도 자신의 유죄 판결 내용의 기사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와는 반대로 항소법원에서 자신의 유죄 판결이 각하된 사람이 관련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여 삭제했다.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란 인터넷에서 생성되어 저장, 유통되는 개인의 사진이나 거래 정보에 대해 유통기한을 정하거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다. 소셜 네트워크서 개인의 사생활이 무분별하게 오르내리면서 잊힐 권리가 힘을 받는다. 그러나 그 권리의 법제화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사법적 판단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우선 법제화에 따른 부작용의 우려다.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사이트까지 퍼진 정보를 삭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력과 비용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잊힐 권리를 악용하여 정치인이나 범죄자들이 과거 행적을 지우는 신분 세탁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이는 때때로 선거에 역이용될 수도 있어 국민은 제한된 정보만을 얻는 셈이다.

 

잊힐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법률이 이미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법 등을 통하여 국민에게 잊힐 권리가 이미 반영되어있다는 것이다. 인격권 침해 구제를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통신 심의를 통해 게시물과 댓글 등을 삭제하고 있으며, 당사자가 신고만 하면 게시물이 차단된다.

 

잊힐 권리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정보의 삭제 책임을 검색 업체가 가지는 것이 일종의 검열 형태로 작용할 수 있어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다는 지적이다. 이미 사실로 판명된 정보의 경우에도 당사자가 요구하면 삭제하는 것이 ‘알 권리’차원에서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최근에는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動線) 공개와 잊힐 권리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이 계속 공개되고, 그 정보가 온라인상에서 지워지지 않아 확진자가 다녀간 업체들까지 피해를 호소하는 실정이다. 법률에 따라 감염병 환자의 이동 경로, 접촉자 현황 등 관련 정보를 신속히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어 이해가 상충할 수 있다.

 

감염예방법에서 보호하고 있는 정보의 대상은 확진자에 대한 정보에 한정되어 있어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 등의 업소들이 피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최근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잊힐 권리’에 근거하여 정보에 대한 링크의 삭제 등을 요구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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