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동네 복권방 앞에는 눈에 띄는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다. '1등 3회! 2등 38회!'
태양에 조금 바랬지만, 그 문장은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든다.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치지만, 나는 늘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이젠 외울 만큼 익숙하지만, 매번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움직인다.
"남들도 됐다면, 나도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반은 기대, 반은 체념으로 채워진 진한 분위기다.
나는 조용히 계산대로 다가가 “자동 다섯 장이요”라고 말한다. 점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건넨다.
번호 여섯 개가 다섯 줄 찍힌 한 장의 종이. 이 종잇조각이 내 인생을 바꿔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잠시 두근거린다. 물론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혹시’라는 마음 때문에, 오늘 나는 그 줄에 섰다.
내일의 백만장자를 꿈꾸며, 오늘의 커피 한 잔 값을 포기하고 5천 원짜리 희망을 산다. 상상은 이미 시작됐다. 복권을 손에 쥐는 순간 돈이 생긴 것도 아닌데, 나는 부자가 된다.
만약 ‘이번에 1등이 된다면?’
회사를 바로 그만둘까, 아니면 잠시 휴직을 할까? 아니면 땅을 사두는 게 나을까? 사실 그런 돈이 생기면 내 안에 숨겨진 ‘선한 부자’ 본능이 고개를 든다. 보육원에 기부하고, 친구들에게 조용히 돈을 나눠줄 상상도 해본다. 참 웃긴 일이다. 단지 숫자 여섯 개가 인쇄된 종이 한 장 들고 있다고, 이렇게나 상상력이 풍성해지고 이렇게나 마음이 너그러워질 수 있다니.
"퇴근이 늦어도 괜찮아. 이번 주 토요일에 인생이 바뀔 테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희망 고문 아니냐고, 맞다. 고문이다. 하지만 이 고문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고문이다. 왜냐하면 이 고문은 내 일상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눈앞엔 아무것도 없지만, 하늘의 별 하나를 바라보며 오늘도 걷는다. 그 별이 사실은 신기루일지도 모르지만, 그 별이 있기에 나는 버틴다.
가끔은 내가 도박꾼 같다. 아주 작은 확률에 기대어 조각난 희망을 모은다. 이따금 절망에 가까운 날에도 이 작은 습관은 나를 다시 일으킨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번호 발표 날이면,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조용히 확인한다. 첫 줄부터 틀리면 마음도 금세 접힌다. 하지만 번호가 하나씩 맞아떨어질 때의 전율, 티끌 같은 가능성 속에 숨겨진 황금의 기적. 현실은 냉정하고 통계는 잔혹하지만, 그 숫자들 속에서 나는 나만의 판타지를 산다.
"아, 이번 주도 역시 아니구나."
그럼에도 종이를 구기지 않고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둔다. 마치 다음 주를 위한 복권 제단이라도 되는 듯. 이 희박한 확률의 게임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기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 하지만 이건 단지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만은 아니다.
나 역시, 이 종이를 사는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억만장자에 대한 환상은 그저 포장일 뿐, 그 안엔 ‘내 삶이 지금 이대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좀 더 낭만적이고 반짝이는 방향으로 내 인생이 바뀌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로또는 그 무수한 가능성 중 가장 빠르고 가장 황당한 길이기에 오히려 유혹적이다. 그 꿈이 꼭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가끔 로또를 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에게 ‘선택할 수 있다’라는 감각을 남겨주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움직이진 못해도 세상 어딘가엔 내 인생을 바꿔줄 숫자 여섯 개가 숨어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를 놓을 것 같을 때, 나는 이 얇은 종이를 붙잡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5등, 아니 미당첨만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주마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조금 더 살아볼 이유를 만든다.”
'1등 세 번, 2등 서른여덟 번.'
그 문장은 현실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한 줄기 빛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시 기적을 기대한다. 기적은 늘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그 누군가가 꼭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단순하고도 터무니없는 생각이, 오히려 내 하루를 견디게 한다. 오늘도 나는 복권방 앞을 지난다. 그리고 그 현수막을 바라본다. 잠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앞이 환해진다.
오늘도 나는 억만장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로또 번호가 불리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부자다.

장선옥 작가
≪한국작가≫ 시부문 신인상 등단
≪스토리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등단
대진대학교 졸업, 문학사
대진대학교 법무행정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고려대학교 미래교육원 최고위과정 수료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 포천시지부 부지부장
한국작가협회 회원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포천예총 감사
포천시사진작가협회 회원
사회복지사(보건복지부), 평생교육사(교육부)
기후강사(포천시), 독서지도사
노인건강지도사, 청소년생활지도사(법무부)
국회의원 표창, 포천시장상, 포천문인협회 공로상,
경기도문학상 공로상, 한국예총 경기도연합회 표창 등 다수
시집 '사진을 찍어드립니다' 발감(2025년)
공저 '고려대 명강사 25시'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