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모임이든 정치 시사 관련 대화를 삼간다. 대화의 주제는 제한되고 영혼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마음은 허전하고 도대체 표현의 자유가 있는 듯 싶다. 극단적인 여론의 양극화, 정치적 극단주의가 원인이다.
극단적인 여론의 양극화와 표현의 자유
요즘 어떤 모임이든 정치 시사 관련 대화를 삼간다. 자연스럽고 평안한 대화로 계속 이어지기가 어렵고, 언쟁이나 드잡이가 일어 모임이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식의 진학, 취업, 결혼과 재테크 관련 대화도 일반적으로 삼간다. 대화 도중에 서로 자존심을 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화의 주제가 아주 제한되다 보니 모임은 영혼(?) 없고 내용 없는 수박 겉핥기의 신변잡기, 연예인 얘기, 건강·취미 얘기, 개그 등으로 시간 보내며 술 몇 잔 먹고 끝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왠지 마음이 허전하고 도대체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 말할 자유가 있는지 싶다.
답답한 심경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다”라고 외치고 싶다. 가정, 사회, 국가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 시름, 우울함을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놓을 수도 없으니 내 속내를 속담으로 비유하면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가 딱 맞는다.
친구나 친척 간에도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제약이 많고 공적인 대화에서는 더욱 그러하니 우리 사회, 국가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 또는 단체가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와 사상을 표출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조차 누릴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할 수는 있으나, 그 뒤끝 즉 이어질 여러 후폭풍이 걱정되기 때문인 듯싶다. 심하게 말하면 보복 등 폭력적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가 집단 우울증에 걸리지 않나 걱정이다. 극단적인 여론의 양극화, 정치적 극단주의가 원인이라 생각한다.
우리 정치 사회 관련한 양극단의 여론 대결 양상은 마치 중무장한 K-2 전차가 브레이크 없이 마주 보고 돌진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양극의 여론을 등에 업은 정치권력과 열광적 팬덤은 정치적 극단주의로 치닫고, 다시 정치적 극단주의는 더욱 세를 더욱 불리며 막장 상황을 펼치고 있다.
참된 여론을 잉태하는 건강한 공론장 시스템
민주주의 오랜 등식은 민주정치 = 여론 정치 = 대의 정치였다. 참되고 건강한 여론, 공동선을 향한 발전성, 보편성, 합리성 있는 순기능을 가진 여론이 민주주의 근간이어야 한다.
여론 형성의 주체이자 출발점은 구성원 즉 시민 = 국민이다. 국민이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 여론 형성의 시작인 논의의 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하고, 안전하고 자유롭게 표현하여 참된 여론, 건강한 여론을 잉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여론 생성의 주체이자 출발점인 시민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판단력이 있어야 하고,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극복한 공민 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또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주요 역할을 하는 시스템, 즉 공론장, 소통 시스템을 제공하는 곳이 의회, 정당, 미디어, 각종 시민단체와 기구, 교육기관 등인데 이들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소위 공정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발전적이고 건강한 역할을 위한 자세와 태도, 관점을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 정치가 비교적 잘 구현되는 국가가 그렇다. 매우 교과서적인 이야기이다.
양대 거대 정당에 결박당한 공론장 국회
국회, 정당은 여론의 주된 모태요, 산실이다. 민의와 세론을 수렴하고 이슈를 제공하여 주요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하고, 그에 따라 입법 행위를 하고, 국가 정책 등을 결정해야 하는 대의 민주주의 심장이 국회와 정당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국가 사회의 보편적 의견, 공동선에 앞서 의원들 소속 정당의 패권주의, 편향된 의견이나 이념, 그리고 개인적 지역적 이기주의 등에 매몰된 듯싶다. 건강하고 참된 여론 형성과 민의 수렴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당은 더욱 문제가 크다. 운영 및 소통 시스템을 살펴보자면 자율성, 독립성, 다원성, 다양성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정쟁의 행위, 권력투쟁의 행위, 밀실 입법 행위를 일삼는 ‘국회’와 공동선을 향한 민의와 여론은 외면하고 이기주의, 패권주의라는 달콤한 맛에 매료당한 ‘거대 양대 정당’은 마치 공동의 운명체인 양, 거의 자발적으로 폐쇄회로의 동아줄로 서로를 꽁꽁 결박하고 있다. 양대 거대 정당의 소속 의원들은 당과 각각의 구미에 맞는 민의와 여론만 골라 듣고, 그렇지 않은 민의와 여론은 죄악시하며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국민을 양분하고 여론의 양극화를 부추긴다. 우리 대한민국 여론 생성의 특징은 ‘계급, 계층, 이념,지역 등에 의한 편향성, 패권주의, 이기주의’ 등에 의해서 건강하고 참된 여론이 좌절당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와 정당, 의원이 이러한 폐쇄적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건강하고 참된 여론을 생성하는 공정하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론장 역할 수행은 불가능하다.
제 역할 못 하는 미디어 공론장 시스템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민주정치가 봉건왕조와 일제 강점기 등 엄혹한 시대와 긴 독재 기간을 거쳐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시기는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라는 생각이다.
우리 미디어는 그 이전의 수직적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통치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 역과 관료의 충실한 상명하복의 정보 전달 역을 수행하는 ‘배부른 미디어’, 체제에 저항하는 자유 언론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사 역의 ‘배고픈 미디어’, 생존에 충실한 ‘생계형 미디어’ 등으로 나뉘어 서로를 부정하고 갈등하는 오랜 미디어 흑역사 기간을 지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니 수용자 측면에서 보면 건강하고 공정한 여론 산실의 공론장을 제공한다거나 왜곡 없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다원적 시각을 제공하는 등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접하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이다. 그 이전에는 여론 생성의 기본적 주체인 국민은 거의 공론장 불모의 상태에서 제대로 된 공론 체험을 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통치 권력이나 특정 미디어가 주는 일방적 정보만을 수용했다.
즉 미디어의 수용자이자 여론 형성의 주체인 필부필부인 우리 국민은 불행하게도 미디어 경험과 능력, 미디어 정보에 대한 변별력과 판단력 및 비판적 시각, 공론 논의에 대한 교육과 참여가 부족한 상황에서 관치언론 등을 통한 일방적 정보에 오랜 기간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결과가 오랜 기간의 애달픈 ‘왜곡 여론, 불구 여론’이다.
이후 우리 방송 통신 등 미디어 환경은 관련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디지털화로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던 미디어가 법과 제도, 환경의 변화로 2010년 대를 거치면서 인터넷 개인방송 등 매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폭발적 미디어 팽창기에 진입하였다.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는 기본적인 법과 제도도 준비하지 못하고, 미디어 검증 및 통제는 물론 콘텐츠 및 뉴스의 사실성조차 검증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용자 국민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가짜 뉴스, 잘못된 정보의 늪 속에서 빠져 허둥대는 지경에 놓인 것이다. 미디어 수용자와 검증 및 통제 기관 모두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감당치 못하고 있다.
한편, 미디어는 수용자 및 광고 시장의 한계로 미디어 간 경쟁, 기술적 경험과 수준, 재원을 확보한 기존의 미디어와 신생 미디어 간의 갈등, 상대 미디어의 언론 자유까지 부정하는 색깔 경쟁, 거대 양대 정당의 패권주의에 편승한 미디어 간 갈등 등 그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그러니 우리 미디어 매체들은 참된 여론을 생성하는 공론장 역할 수행은커녕 양대 거대 정당의 양극화 여론을 부추기며 왜곡 여론을 생성하는 등 제각각 개성(?) 있는 스펙트럼을 반짝이고 있다.
우리에게 불어닥친 광풍과 표현의 자유
대한민국의 거대 양대 정당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합종연횡, 변신을 거듭하며 정치뿐 아니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와 국민, 언론, 지역, 여론을 분할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극단주의, 패권주의, 이기주의, 지역주의’를 노골적으로 앞세우는 거대 양대 정당은 국민을 철저히 정쟁의 도구로 삼고, 각각의 민의와 민심, 여론을 명분으로 내세워 대한민국 전역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다소 과하게 표현하자면, 양대 정당의 지도층은 전장의 야전사령관이요 그 휘하의 정치 팬덤은 특공대, 양극단을 지지하는 국민은 전사이다. 공동선과 민주적이고 보편적인 철학과 가치, 이상, 이념은 팽개치고 정쟁만을 일삼는 한심한 상황이다.
양극화 여론에 끼인 국민, 권력 및 거대 양당의 폭력과 힘에 눌린 국민은 이곳저곳의 눈치를 보며 헌법에 있는 표현의 자유를 감히(?) 누리지 못하는 놀라운 비민주적 상황에 놓여 있다. 의제나 이슈를 놓고 대화하고 토론과 토의, 협의를 거쳐 보편적이고 건강한 공공의 의견을 만드는 민주적 절차 없이 바로 극단적인 언쟁이나 드잡이, 마녀사냥과 신상 털기 등과 같은 폭력적 보복을 일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현자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말을 명심하고 있다.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은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라는 말을 남겼다.
양극단의 여론을 생성하며 국민을 이용하는 거대 양대 정당, 그리고 그에 편승한 정치 팬덤, 필자를 포함한 필부필부인 우리 모두 민주주의 다원성과 다양성, 관용과 아량, 다름에 대한 인정과 인권의 가치를 깊이 인식했으면 싶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