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꿈을 가지고 있는가?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시인 사무엘 올만은 ‘청춘’은 어떤 나이대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 했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는 70세 노년에 청춘이 있을 수 있다.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사람은 이상과 열정을,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는 말이 있다.

 

 

꿈을 말하는 이가 줄고 있다

꿈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꿈은 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을 적는 조사서에만 존재하는 게 아닌지......  “요즘 같은 사회에 꿈을 갖고 사람이 있을까요?”, “꿈을 가질 수 없고 키울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청춘도 아니고, 이 나이에 무슨 꿈을 가질 수 있나요?”, “꿈이 없습니다. 꿈이라고 하면 현재를 즐겁게 사는 게 꿈입니다”- 꿈을 말하지 않는다.

 

꿈은 잠잘 때 경험하는 일련의 현상이지만, 일반적으로 희망 사항, 되고 싶은 직업, 목표 등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꿈은 일반적으로 사회, 가족, 타인이 대부분 인정하는 공동의 가치를 포함한다. 다시 말하면 동의하고 기대고 싶은 모델 또는 가치관을 담고 있는 것이 ‘꿈’이다.

 

고전적 의미의 ‘꿈’은 보통 우리 사회의 보편적 패러다임과 함께한다. 공적 차원에서는 “내 꿈은 이 세계가 자유롭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 꿈은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살게 만드는 것이다”와 같은 말 등으로, 개인적으로는 장래 희망이나 직업 등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들을 지도할 때에는 '장래 희망'을 대체하는 말로, 중고등학생 이상의 청소년기에는 '인생의 목표', '일, 직무 등의 비전'을 대체하는 말로, 진학지도에 쓰인 게 ‘꿈’이었다.

 

현대사회는 개인의 취향, 사회적 가치, 산업의 형태가 점차 극소 단위로 파편화된 ‘나노 사회’로 향하고 있다. 나노 사회는 물질만능주의, 상업주의, 현실주의가 팽배한 극단적 개인주의 사회이다. 공동의 사회적 가치,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주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족주의가 형성되는 나노의 현대사회에서 필자는 고전적 형태의 ‘꿈’이 아닌 새로운 ‘꿈’을 말하고자 한다.

 

꿈은 개인, 국가, 공동체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꿈은 행복의 한 요소인 성공, 성취의 발원지에 해당하는 희망과 이상이다. 어떤 사유로 꿈이 없거나 포기하는 것은 삶에 의욕이 없는 것이요, 행복으로 가는 길을 시도하지 않음과 같다. 꿈이 없으면 치열하고 일관된 노력이 빈약하기 쉽다. 또 꿈을 포기하면 일반적으로 노력도 열정도 시들해진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난 나중에 시도도 하지 않은 자신에 대하여 자괴감에 빠지고 후회한다.

 

꿈을 포기하여 생기는 후회는, 꿈을 이루기 위한 시련, 부딪혀서 생기는 순간의 고통보다 훨씬 크고 괴로울 것이다.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의‘의지와 열정’은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비록 꿈을 이루진 못해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는 미래의 훌륭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나 사회공동체에도 반드시 꿈이 있어야 한다. 특히 국가의 꿈은 국민에게 이상, 희망, 비전, 목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미래를 창조하기에 꿈만큼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말이다.

 

꿈은 국가나 인류에 있어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티브(motive)가 되는 동력원이다. 그래서 대통령 등 국가 지도자들은 국가의 모든 지혜와 경험, 미래에 대한 전망, 예측력, 자산을 총동원하여 매년 ‘연도별 계획’을 발표하고, 장기적으로 ‘00 계획’과 같은 개발계획 등을 수립, 발표함으로써 국민에게 미래의 희망을 제시한다. 희망과 꿈이 있는 국가에는 신념이 있고, 목표가 있고, 계획이 있고, 실천이 있고, 성공이 있다. 국가의 꿈은 국민이 행복으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꿈은 무엇인가? 아니 꿈이 있기나 한 것인지, 발표한 적은 있는지가 궁금하다. 아울러 필자 또한 개인적으로 꿈, 희망, 비전 등에 대하여 생각한 적이 있는지, 그것을 가슴에 품고 있는지를 자문한다.

 

꿈은 암울한 시절에도 있었다. 꿈은 생명이다

시인 정지용은 1919년 삼일운동 직후인 1923년, 동경 유학 시절에 숨도 쉬지 못하고 움츠리고 있던 일제 강점기에 고향 충북 옥천을 그리며 향수를 달랜다. 그는 ‘향수’라는 시에서 이렇게 꿈꾼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삼일운동의 좌절로 더욱 엄혹해진 그때, 한국 현대 시의 선각자로 불리는 정지용은 차마 자유와 독립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한 채, ‘얼룩뱅이 황소가 게으르지만 자유롭게 우는 모습으로 저항정신’을 표현하여 그리움으로 노래한다. 시인의 꿈은 수면 중의 꿈이면서 희망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음악가 현제명(이 음악가에게 문제가 다소 있지만, 이 곡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인용)은 일제 강점기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을 때인 1931년에 ‘희망의 나라로’를 작사 작곡하였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산천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이하 생략)’

 

일제 강점기 암담한 질곡의 우리 민족 모두에 꿈과 희망을 주고, 일제에 저항하는 힘을 북돋는 데에 일조한 애창 가곡이다. 한 줄기 빛도 없이 암울하던 그때에도 이 노래는 자유 평등 평화 행복을 희망하며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암울한 시대에 강탈당한 나라와 민족을 대신하여 뜻있는 시인, 음악가들은 ‘꿈과 희망’을 이처럼 끊임없이 절규하며 노래하였다.

 

그런데 자주독립의 부강한 나라,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지금 국민에게 무슨 꿈을 제시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특히 소위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이 나라, 이 국민에게 도대체 무슨 꿈과 희망을 제시하는지 묻고, 암울함과 절망이나 주는 게 아니냐고 다시 반문하고 싶다.

 

나이 불문 꿈이 있어야

꿈은 생명이다. 뭐 이 나이에 꿈을 논하랴 말해서는 안 된다. 인생을 사계절과 비교하여 나이를 논하는 이가 있다. 25세까지는 봄, 50세까지는 여름, 75세까지는 가을, 그 이후는 겨울로 말하곤 한다. 서양에서는 65세~75세를 젊은 노년(young old), 활동적 은퇴기라고 부른다. 사회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연령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시인 사무엘 올만은 ‘청춘’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는 70세 노년에 청춘이 있을 수 있다.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과 열정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는 말이 있다.

 

이런 이유로 나이 불문, 마음의 청춘과 열정과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어가 생명력을 소실하기 시작하므로 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때의 꿈은 이상, 비전, 목표 등 거대 담론의 꿈이 아닌, 행복, 즐거움, 생명력 등의 모티브가 되는 적정하고 소담한 꿈일 것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청춘은 10~20대 청소년들의 점유물이 아니고, 그들의 학습환경 조사서에 장래 희망을 적는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다. 꿈이 없거나 잃으면 생을 잃기 시작함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꿈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현대는 사회의 성격, 사람의 심리, 공동체 및 개인의 가치와 비전, 삶의 목표, 행복의 기준 등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급변 등 변화 자체가 아니고 지난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지난 과거의 낡은 것은 과감히 버리고, 내용이나 형식 일체를 다시 정립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 출발할 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을 때 자주 인용되는 글귀이다.

 

현대의 사회는 집단의 가치에 동조하기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는 개인주의의 나노 사회, 파편화된 집단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를 중시하는 가족에서조차 개인주의 가치관이 우선하고,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수(2021년 33.4%)가 매년 빠르게 증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국민, 우리’라고 표현되는 ‘국가 등 공동체, 가족’의 일원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개인에 적합한 맞춤형‘꿈과 희망’으로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시대적 상황, 성취 지향적 목표, 교육적 목적 등에 적합했고, 그를 위해 존재하였던 획일화되고 공동화되었던 ‘꿈과 희망’의 캐치프레이즈도 시대 조류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아무튼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를 먹고 사는 것보다는 미래에 대한 꿈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꿈은 시대 불문, 상황 불문, 나이 불문 가질 수 있고, 갖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꿈은 삶에 대한 열정으로 그 자체가 생명이요 에너지원이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

저작권자 ©포천좋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포천좋은신문 | 주소 : 경기 포천시 포천로 1618, 2층(신읍동) 발행인 : 김승태 | 편집인 : 김승태 | 전화번호 : 010-3750-0077 | 이메일 : pcgoodnews@daum.net | 등록번호 : 경기,아52593 | 등록일 : 2020.07.02 저작권자 ©포천좋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