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치 체제라도 권력자나 정치인은 여론, 민심과 함께하기를 소원한다. 그것을 잃으면 결국 권력을 상실한다. 민심과 여론은 그래서 무서운 양날의 검이다
권력과 민심과 여론
민심과 여론은 너무 광범위하고 복잡해서 논하는 게 쉽지 않다. 대한민국 현재의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민심은 일반적으로 권력과 백성이 수직적 관계일 경우 백성의 의견과 관심을 전통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소위 루소가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다는 여론(public opinion)은 서구 시민사회가 형성되며 국가 권력과 시민의 관계가 수평적인 관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두 용어를 명확히 구분하여 가려 쓰지만, 일상 대화에서는 엄격하게 구분해서 쓰지는 않고 유사 의미로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조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는 민심을 공론(公論)으로 보고 백성이 가진 판단이나 의견은 군왕도 거역할 수 없는 신성하고 옳은 것으로 보았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세네카나 마키아벨리와 같은 철학자의 어록을 예로 들 필요까지 없다. 민심이나 세론(世論)은 신성한 소리며 현자는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거역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어떤 것으로 평가하였다.
중국 황실을 배경으로 한 우리 TV 역사 드라마의 장면이다. 황제 다음의 실권자 대승상이 부하에게 죽임을 당한다. 가장 신뢰하던 부하가 칼을 겨누며 “승상의 권력에는 백성이 없어 탐욕에 불과하다”는 말과 함께 살해한다. 제왕적 왕조 시대에도 권력과 통치에 명분이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중 하나가 민심이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우리는 통치자가 그것을 잃고 나서 권력을 잃는 것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대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어떤 정치체제 국가라도 권력자나 정치인은 모두 여론, 민심과 함께하기를 소원하며 그를 위해 노력한다. 그것을 잃을 경우, 다소 시차는 있더라도 함께 권력, 지위 등을 상실한다. 민심과 여론은 그래서 무서운 양날의 검(劍)이다.
민심과 여론을 얻기 위한 권력의 노력
조선시대 임금 정조는 태종 이방원과 더불어 왕조에서 강력한 통치력이 있었던 임금으로 평가받는다. 정조는 영조의 세손으로 ‘죄인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지닌 채, 왕위에 오른다. 그런 정조가 임금으로 오른 지 16년 만인 1792년에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있다. 영남 유생 만 명이 연명한 엄청난 양의 상소를 읽는 모습이다. 유생들이 ‘정조의 아버지 죄인 사도세자의 복권’을 주청하며 집단으로 상소를 올리고, 정조가 이에 눈물로 화답한, 이른바 ‘영남 만인소’라는 역사적 사실의 한 단상이다.
봉건왕조로 보면 희대의 사건이었다. 정조는 임금에 오르며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한다. 정조가 오랜 인고의 세월을 지내며 민심에 의한 정치를 한 것에 백성이 ‘천심인 민심’으로 화답한 것이다. 그 후 사도세자의 추존 작업과 복권의 기틀은 마련되었다. 혹자는 영남 유생을 움직인 뒷배를 논하는 이도 있으나 아는 바가 없다.
또 정조가 자신의 통치 노선과 정책에 반대하던 소위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론 벽파의 대표 선비인 심환지와 거의 300차례에 달하는 비밀 편지를 교환하는 등 소통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조는 편지에 답이 없자 “소식이 갑자기 끊겼는데 경은 그동안 자고 있었는가? 술에 취해 있었는가?”라고 묻는다. 국정은 물론이요, 개인적 고민, 농담 등도 편지에 스스럼없이 실어 소통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정조의 신하에 대한 관용과 다름에 대한 배려의 마음과 뜻이 깊이 다가온다. 정적과의 대화를 통해서라도 민심을 얻으려고 하는 임금 정조의 통치술이자 진지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민심은 대체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민심을 얻으려면 인내와 진실성, 그를 위한 노력이 기본이다. 현대 우리 대한민국의 권력자, 정치인들은 깊이 느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히틀러의 일급 참모이자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가 즐겨 읽었다고 하는 선전 전략의 고전 '프로파간다(1928, 에드워드 베네이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군주제든, 입헌제든, 민주제든, 공산제든 정부의 성패는 여론의 지지 여부에 달려 있다”라는 글이다. 결국 괴벨스는 공론장의 주된 시스템 언론을 장악한다.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유치한 다음, 최초로 TV 실황중계를 하며 베를린 시내 전역에 라디오 방송 스피커를 설치해 놓고 중계 방송한다.
히틀러는 그 시스템을 선전 도구로 활용한다. 그는 독일의 민심과 여론을 장악하고 인류에 씻을 수 없는 전쟁을 일으킨다. 현대의 정치에서 최고 통치자 예를 들면, 그가 중국의 시진핑이 되었던, 러시아의 푸틴이 되었던 모든 최고 통치자는 여론과 민심에 대하여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다. 그런 여론과 민심이 반드시 순기능을 갖지는 않는 점 명심해야 한다.
민심, 여론의 기능과 문제점
민심은 여러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란 관점에서 개별적 의견과 판단이 아닌, 집체적인 공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전에서는 군왕도 거역해서 안 되는 신성하고 옳은 것으로 적고 있다. 맹자는 민심을 하늘의 명 즉 천명으로 보아 민심이 떠난 군왕은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지엄한 존재이며 극단적 정당성을 가진 존재’로 보았다. 그런데 민심은 통치 권력에 대하여 자발적 의지나 저항적 행위를 나타내지 못하는 무능하고 비정치적 존재라는 한계성을 가진다. 그 말은 누군가에 의해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론은 국민 사회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발생하여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정치적 또는 사회적 필요성이 있을 때 형성되기 시작한다. 서구에서 시민사회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국가권력과 사회, 사회 속의 여러 관계가 수평적 관계가 이루어지며 민심이 공론으로 변화하고 현대적 의미의 여론(輿論, public opinion)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여론이 민주정치의 주요한 통치 이념의 한 축이 되고, 선거에 의한 대의 정치가 민주정치의 원리로 자리 잡게 되어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구성원들의 관심을 제고하고, 의견을 종합해 대처하는 좋은 방법을 마련할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사회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의견 가운데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은 의견이 여론이다. 그래서 여론을 통해 채택된 제안 혹은 방안은 그 어떤 의견보다 정당성이 강하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여론은 정치 지도자와 시민 모두에게 주요 사안에 관한 시민의 입장과 태도 및 요구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토록 하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여론으로 채택되지 못한 의견은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함으로써 그를 제시한 소수는 여론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해야만 한다.
여론은 민주적 지배 사회(시민민주주의)의 통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정치를 여론정치, 현대 민주정치의 근간인 대의 정치를 여론에 의한 정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론은 정치 지배에 대한 비판, 거부 및 견제 기능의 정당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여론은 이러한 긍정적인 기능이 있지만 역기능도 있다는 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여론이든 민심이든 그 내용과 방향이 사회나 국가, 구성원의 진보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그 방향과 내용이 비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여론과 민심이 만들어지는 과정 및 그와 관련한 주체, 공론장, 이슈의 사실성 등에 왜곡, 거짓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론을 둘러싼 여러 시비, 즉 왜곡 여론, 가짜 여론, 합리적 여론, 참된 여론, 건전한 여론 등과 같이 서로 배치되거나 상반되는 개념의 여론이나 이슈의 사실성, 진실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현실이 그러한 사실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론과 민심이라는 명분으로 소수의 건강한 의견이나 집단이 탄압될 수 있고, 결과는 너무 폭력적인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것 - 매우 두려운 면이다.
여론의 모태(母胎), 바람직한 공론장
여론을 생성하는 기본적 주체는 사람이다. 현대 시민사회에서 여론이 만들어지는 긴 여정은 구성원이 모여 ‘대중의 공통적 의견(公論)’을 의논함에서 출발한다. 기본적 주체인 사람과 모임, 단체, 집단 등은 특정 사안에 대하여 의논하거나 토론하는 공론 행위를 시작하는데, 공론이 이루어지는 곳, 장소, 시스템을 공론장이라고 한다.
서구 시민사회 초창기에 이 역할을 한 곳은 살롱, 커피숍, 정치 모임 등이었다. 현대적 의미의 공론장은 시사적 정치 토론이 가능한 정당, 언론, 의회, 각종 시민사회 단체, 교육 기관 등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합리적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이성적인 시민 의식과 보편적이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가진 구성원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이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여론의 모태가 되는 공론장은 의견과 주장들이 전시되고 비판, 토론되어 시민 모두가 공감하는 진정성 있는 의견과 보편적 주장을 선택, 합의, 찬동하는 열린 소통의 마당이어야 한다. 이런 공론장에서 생성된 여론만이 공중의 동의와 인정을 얻은 보편 의견이요 합리적 여론이다.
이와 같은 성격의 여론은 구성원 전체를 지배하는 의견으로서 통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반면에 여론의 모태가 되는 공론의 의논·토론 과정에 사실이 아닌 왜곡, 거짓과 가짜를 퍼뜨려 참되고 건강하지 않은 여론을 형성케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적이요, 범죄 행위이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