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진 작가의 시 '강아지풀 시창작법' 외 2편

은평예총 회장, 종합문예지 ≪스토리문학≫ 발행인

 

 

강아지풀 시창작법 

 

 

풀은 각자의 서술방식으로 시를 쓴다

자기 이름이 무언지 모르는 풀들

풀은 이데올로기를 모른다

풀은 오직 푸르러야 하는 사명뿐

풀은 명예를 모른다

그래서 풀은 낮을 꿈꾸며 밤에 시를 쓴다

그래서 풀은 여름을 꿈꾸며 겨울에 시를 쓴다

그래서 풀은 줄기를 꿈꾸며 뿌리로 시를 쓴다

풀의 주된 서술방식은 생략

풀은 향기로운 열매를 생략한다

겨울 동토의 시련을 생략한다

그래서 내년의 꿈마저 생략하고 오로지 푸르다

풀은 열매보다 달콤한 새벽이슬을 형용사로 매단다

풀은 온갖 미사여구를 퇴고하여 휴지통에 구겨 녛고

풀은 주변과 동화하는 푸르름의 시를 쓴다

풀의 마디마디와 긴 꼬리수염에 난 수많은 시어들

풀은 제자리를 맴돌며 우주적인 시를 쓴다

 

 

 

숲에서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대화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님을

그들은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듣기만 하면서도 시시때때로 웃으며

서로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들은 진리는 푸른 것이라고

몸으로 말한다

말하지 않고 듣는 자는 우리며

말해야 듣는 자는 타자인데

말하고 있을 때 지나치는 것이 세월이고

들고만 있을 때 세월도 동안거에 든다고

숲은 겨울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눈[雪]의 화법 

 

 

눈이 온다 하얀 눈송이가 마구 흩날린다

펑펑 내린다 펄펄 날린다

나비 같이 날아다니는 눈이 어깨춤을 추며 내려온다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꾼다

그러나 눈은 자신이 눈임을 알지 못한다

눈에 눈이 달리지 않은 눈은 눈 뜬 장님이다

그래서 창에도 부딪히고 나무 위에도 차 위에도 내려앉는다

걸어가는 내 머리 위와 어깨 위에도 내려앉는다

 

여름이 있으면 겨울이 있고 비가 오다가 눈이 온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은 밤에 어둡고 낮에 밝은 것과 같은 이유

나무가 공중에 잎을 내밀고 자유로이 푸름을 펼치는 것은

뿌리가 여린 손가락으로 물을 구해오는 수고

눈이 내리는 것은 흐린 겨울날의 공감각적 표현일 뿐

다만 우리는 가끔씩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눈은 눈에 미끄러져 다치거나 눈 치울 걱정을 알지 못한다

처한 상황을 즐겁게 사는 법을 몸소 보여줄 뿐

 

 

 

김 순 진

경기도 포천 출생, 현재 고려대 미래교육원 강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장,

은평예총 회장, 한국현대시협회 감사 역임, 도서출판 문학공원 대표,

종합문예지 ≪스토리문학≫ 발행인

수필춘추문학대상, 포천문학대상, 박건호문학상, 한국예술문화대상,

자랑스러운한국인대상, 자랑스러운인물대상 등 수상

소설집 『윌리엄 해밀턴 쇼』, 장편소설 『너 별똥별 먹어봤니』 등 저서 1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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