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천시 군내면 용정리 192-1번지의 소재한 파평 윤씨 판서공(휘 세징)파 일가의 묘역에는 백사 이항복의 사위인 윤세징(尹世徵)과 그의 아들 윤이익(尹以益), 윤이제(尹以濟) 등의 묘소가 있다. 윤세징은 파평 윤씨 포천지역 입향조이다. 1631년(인조9)에 37세로 졸서하여 치적은 드러나 있지 않으나, 그의 묘역에 설치된 석조물은 조선 숙종조 기사환국 때 최고 반열에 오른 윤이제가 당대 최고의 명장(名匠)들에게 의뢰해 치장한 것으로 조선시대 왕릉의 석조물에 버금가는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년도 3월부터 판서공(휘 세징)파 일가의 묘역을 조사하고 있는 홍순석 단장(강남대 명예교수)은 경희대 중앙박물관팀, 해동암각문연구회 조사단과 함께 3개월간 조사한 성과를 6월 19일 포천시 산림조합문화센터에서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
본보에서는 지난 3월 13일자에 관련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이번에는 중간보고회 자료집을 바탕으로 중요한 사료적 가치와 보존 방안을 정리해 게재한다.


우선, 판서공(휘 세징)파 일가의 묘역은 기호지역 남인계 핵심 가문의 묘제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윤세징과 윤이익의 묘갈 건립 연도에 숭정 정축년(1637,인조15)을 기점으로 삼고 「崇禎丁丑年後 四十七年」 「崇禎丁丑年後 五十五年」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는데, ‘숭정 정축년’은 인조가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굴욕적인 항복을 한 해이다.
비석의 건립 연도 기점을 「崇禎丁丑年」으로 삼은 것은 특이한 사례이다. 일반적으로 ‘숭정후(崇禎後)~’로 표기하고 있는데. 정축년의 치욕적인 사건을 굳이 기점으로 기록한 것은 묘갈의 찬자인 이관징(李觀徵)과 윤이제의 확고한 사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윤세징 묘갈은 고위층 관료이자 해서체의 명가로 알려진 예조판서를 지낸 이관징이 글을 짓고 아울러 글씨를 썼다. 이관징이 해서체로 쓴 포항시 경주 손씨 묘비와 대전시 동구 송기수의 신도비는 이미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윤세징의 묘갈은 ‘글을 짓고 아울러 글씨를 쓴(撰幷書)’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금석문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윤세징의 묘갈이 17세기 이수방부형의 대표적인 명품이라는 사실도 그 가치를 제고한다. 전면에는 두 마리의 용이 마주하고 있으며 4조(爪)로 여의주를 잡고 있는 형상을 조각하였다. 후면에는 구름 모양에 싸인 달과 달무리를 중앙 상단에 조각하였다.
참고로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소재한 인흥군(仁興君)의 묘갈은 이수방부형 전면과 후면에 두 마리 용이 서로 여의주를 쟁취하는 형상을 조각하였다. 인흥군의 묘갈은 1986년도에 포천시의 향토유적 제2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2년도에 경기도 기념물로 승격되었다.
포천 지역 여타 묘소의 석물들과 비교 분석했을 때 윤세징 묘갈의 이수와 함께 문인석의 조형성과 예술성은 탁월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예술성에서도 문인석 안면부의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조각 기법은 묘주인 윤세징과 동시대 인물이며, 왕족인 인평대군 이요의 묘역 문인석과 비교해 봐도 손색없음을 알 수 있다.
두 문인석은 조각 기법이나 기술 면에서 양관과 조복, 폐슬, 후수 등 복식의 표현 양식이 유사한데, 세부적인 표현이나 조각의 마감에서 윤세징 묘 문인석의 표현이 조금 더 정갈하고 정교하다고 할 수 있다. 입꼬리가 내려져 안면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인평대군 묘 문인석에 비해 윤세징 묘의 문인석은 온화한 미소에 이목구비를 해학적이면서 생동감 넘치도록 표현한 조각 기법이 탁월하다고 분석된다.
동자석도 양관조복을 착용한 형상으로 조각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쌍각 형태로 머리를 묶은 동자석과 구별된다. 17세기 고위 관료층의 묘역에서 흔하지 않게 나타는 양상을 윤세징의 묘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매우 의미가 있다.


파평 윤씨 판서공(휘 세징)파 묘역은 단순히 한 문중의 종산 개념을 넘어 역사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만큼 보존·보호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 판서공(휘 세징)파 묘역 있는 군내면 용정 지구는 산업단지로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이 시점에서 보다 확실한 보호 장치를 하지 않으면 귀중한 역사 문화의 현장은 영원히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4백 여년간 판서공(휘 세징)파의 세거지로 전해온 용정마을은 현재 세종-포천간 고속도로 개설로 개발로 분리된 상태이며, 종산 근처까지 용정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의 개발 때문에 많은 묘역들이 이장을 해야만 했다.
파평 윤씨 판서공(휘 세징)파 묘역은 포천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충분한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묘역인 만큼 포천시 문화유산 지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같은 시기에 같은 여건으로 조성된 포항시 경주 손씨 묘역 3건은 각각 경북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대전시 동구의 송기수 묘역은 대전시 기념물 제46로 지정되었다.